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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가득한 다락방
문학이 어째서 위대한 것인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체실 비치에서>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단순히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건 뭐 <선데이 서울> 가십란에나 실릴 법한

사건이 전부지만, 그러나 결국 마지막 부분을 읽던 나를 지하철 안에서 질질

울게 한 그 힘은 결국 이언 매큐언의 힘이요, 문학의 힘 아니겠는가. 

문장들을 읽으며 가슴이 아렸던 게, 점점 줄어가는 페이지가 아쉬웠던 게

그러면서도 결국은 고급 독서가 주는 충만함으로 행복했던 게 얼마만이던가...

이 짧지만 강렬한 소설은 결국 청춘에 바치는 비가이자, 사랑의 어리석음과

그로 인한 잔임함에 대한 고발이며, 또한 모든 선택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회한에 대한 노작가의 위로가 아니었나 싶다.

무릇 모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이 소설 또한 독자의 컨텍스트에 따라

울림의 폭이 크게 갈릴 거로 보인다. 나로 말하자면 삼류 코미디 같기도 하고

저질 사기극 같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덜 아문 상처인

지난 연애를 떠올리며 읽었는데, 그러자 어느 한 문장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맑아서 더 어리석었던 사람들의 후회와 슬픔... 그리고 인간이라는 동물의 근본적 이기심...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첫날밤과 1년간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가 원하는 무엇으로 대체하여 이해해도 좋을 만큼

변용의 여지가 풍부한 멋진 은유였다. 그들의 첫날밤 트러블과 그로 인한 상처는

우리가 지난날 저지른 실수와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이후의 삶

그 어느 것으로 바꿔 대입해도 충분히 공감가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인생은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의 연속이기에 "운명"이니 "굴레"니 하는

말들이 생겨났을테지. 그리고 인생이 그런 것이기에 문학이, 아니 예술이

필요하고 또 계속 존재하는 것이겠지...

체실 비치라는 곳에 가고 싶어졌다. (가상의 장소는 아니겠지?)

그리고 모차르트 현악5중주 D장조를 찾아 듣고 싶어졌다.

그 음악을 듣고 나면, 연주가 끝난 후 위그모어홀에서 9C좌석에 시선을 돌리던

플로렌스의 어찌할 수 없는 그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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