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햇살 가득한 다락방
어린 시절 장래 희망 중에 꼭 한 번은 포함되곤 했던 게

‘선생님’ 아닐까 싶다. 국민학교 다닐 땐 엄마 같이 푸근한

선생님이 마냥 좋았고, 사춘기 땐 총각 선생님과 나의

나이 차를 따져보며 졸업 후 꼭 그의 연인이 되고 말리라

헛된 꿈을 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평범하고

배 나온 남자였던 국사 선생님이, 그땐 왜 브래드 피트

열 트럭과도 바구고 싶지 않은 훈남으로 느껴졌을까.


대학에 가선 젊고 댄디한 강사들만 찾아다니며 시간표를 짜느라

잔머리를 굴리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학부모의

나이가 되어 돌이켜보니,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숨쉬고 계신

선생님은 분명 따로 있었다.

고리타분한 헤어 스타일에 팽팽 돌게 두꺼운 안경을 쓰고

깡마른 몸으로 ‘시의 이해’를 강의하신 내 전공 학과 교수님은

그러나 강의실 안네선 늘 진지하셨고, 또 자신이 가르치는

‘시’라는 학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듯 보였다.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힘에 부칠 때면 문득 그 깡마른 교수님이

떠오른다. 나의 밥벌이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시를 가르치셨지만

그분에게 배운 그 시간들이 없었던들 나는 지금보다 몇 배는

삭막하고 건조하고 불행한 인간으로 살고 있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최고의 교수>를 읽으면서도 내내 머릿속에서

교수님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다큐멘터리에 소개될 만큼

세계적인 석학은 아닐지언정, 그분은 나의 영원한

마음속 스승이니까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교수에게 배우는 학생들은

분명 행운아일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도

위대한 스승은 늘 있어왔다. 그러니 이 위트 넘치고

지혜롭고, 열정적인 교수들을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니다.

찾아보면 국내에도 이런 교수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아... 강의실에 앉아 막연한 기대와 불안으로 가슴 설레며

마음과 머리를 채우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턱없는 소망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지만

‘내 스승’이라 말할 수 있는 스승을 만날 기회는

아무래도 젊은날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게 될 어느 낯선 독자를

질투하던 알베르 까뮈처럼, 지금 이 순간 좋은 스승 밑에서

공부하고, 또 방황하고 있을 낯모를 젊음들이 몹시도 질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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