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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ida
  • 별을 쫓는 자
  • 로저 젤라즈니
  • 11,700원 (10%650)
  • 2008-09-30
  • : 375

(예전에 올린 서평인데 블로그를 닫는 바람에 여기 재등록합니다)


오랜만에 숨막히는 독서였다. 젤라즈니에 나바호신화의 조합이라니 이런 축복스러운 책이 다 있나. 중간중간 숨이 떨려 몇 번 덮고 생각하다가 다시 보곤 했다.

언제나 느끼지만 젤라즈니는 우주적인 사건을 개인적 사건으로 치환하는 데 천재적인 것 같다. 혹은 그 반대일까. 외계생물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그의 증오심이 인류전체로 향할 가능성을 나를 쫓는 것으로 대신하'는 생각을 펼치다니. 

'동물의 인격화'를 넘어서서 '사물의 인격화'까지 이르는 미국 원주민의 신화적 상징체계를 '외계생물'로 전환하여 표현하다니, 예술적이다. 그러니까 콘라드에 등장했던 "아, 얘네들이 돌연변이라 피 좀 빨고 햇빛 무서워해서 그렇지 흡혈귀가 아니랑께롱'을 넘어서 '아, 그러니까 얘가 지구에 놀러온 변신외계생물이라서 그런 거지 결코 옛날에 돌이나 바위가 말을 했던 게 아니었당께롱.'에 이른다고나 할까. 그는 과학에 찌들은 꽉 막힌 현대인에게 과학적으로 신화를 이해하는 눈을 갖게 해 준다.

농담으로 젤라즈니는 매번 최고작이라고 하지만 오늘은 동의한다. 지금까지 젤라즈니의 주된 추동은 복수였는데, 이번의 추동은 죽음이다. 죽음을 초월한 자신의 완성이다. 그래서 훨씬 아름답다.

'신들의 사회'의 샘은 부타로 보이지 않았지만(그건 소설 내에서도 인정하는 바고) 빌리는 뼛속까지 인디언 전사처럼 보인다. 물론 신들의 사회의 경우에는 내가 동양인이고 그가 서양인이라서일 수도 있고, 별을 쫓는 자의 경우에는 그가 미국에서 인디언을 접하고 사는 사람이고 내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빌리는 속물스럽지 않고 교활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타인과 나를 구별하지 않고 세계와 자신을 구별하지 않으며 무의식의 세계와 의식의 세계를 구별하지 않는다. 

P.S.
이 책이 심리학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 융 심리학 자체가 샤머니즘적이다. 융은 제자와 후대인에게 '샤먼'으로 평가되는 학자며(심리학계에 없었다면 샤먼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심리학을 완성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원주민과 같이 생활했다. 빌리가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미국 원주민 본연의 모습이다. 이를 보면서 융 심리학을 떠올리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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