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독서를 끝내고 감상문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 갖가지 핑계로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내용을 까먹으면 패스. 하도 반복하다 보니 글 쓰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갑작스레 『노 휴먼스 랜드』의 감상문을 쓰게 된 계기는 별 거 없다. 그냥 간만에 읽은 소설 중 재밌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소설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 책은 나에게 순수하게 소설 읽는 재미를 전해 주었다.
기후 재난으로 인해 범세계적인 기구 UNCDE가 출범하고, 오클랜드 협약에 따라 지구의 온도가 내려갈 조짐이 나타날 때까지 세계 곳곳을 거주 금지 구역,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한다. 기구는 주기적으로 조사단을 보내 그곳의 생태를 조사하는데, 주인공 미아가 조사단에 합류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사가 진행되던 도중 단원 중 하나인 크리스가 거대한 새에게 납치당한다. 그를 구조하기 위해 새가 날아간 쪽으로 움직이지만, 마주한 것은 숨겨진 연구소였다. 그곳에서 연구소장인 앤을 만난다. 그녀는 미아 할머니의 동료이며, 할머니가 거부한 연구를 고집해 기후 재난을 해소하겠다는 야망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녀의 연구는 플론이라는 식물을 전 세계에 살포하는 것이었다. 향정신성 기능을 가지고 있어 향을 맡게 되면 자아가 희미해지고 세상 모든 것을 자신과 연결한다. 곧 타인이 자신이고, 자신이 타인이 되므로 욕심이나 폭력 등의 심리가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욕심으로 인한 무분별 개발이 사라져 기후 안정이 가속화되리라는 것이었다. 진실을 마주한 미아와 조사단원은 발버둥쳐 탈출하고 진실을 알리며 이야기는 끝난다.
아무래도 요새 기후 위기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하다 보니 더 몰입하여 읽었다. 원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좋아하는데, 원인이 기후라니 흥미를 접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전달하는 주제가 기후 재난의 원인이나 해결책 탐구가 아니어서 더 좋았다. 에필로그에서 미아는 자신을 도운 별이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이런 메세지를 전한다.
불안하면 뭐 어때요. 그 마음은 그냥 그대로 두고, 다른 걸 해 봐요. 일단 뭐든 해 보고, 어떻게 되나 봐요. 그리고 또 다시 해보고, 어떻게 되나 봐요. 재밌잖아요. 같이 하면 더 재밌을 거예요. - 에필로그 중 -
기후 위기를 맞이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불안에 떨면서도 재난을 지연시키기 위해 뭐라도 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지켜보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또 시도하고. 재미…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구의 역사에서 수 많은 멸종이 있어왔기에 인류 역시 소멸됨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시나 다른 이의 읽는 재미를 빼앗을까 하는 마음에 줄거리는 최대한 줄였다. 음, 너무 줄여서 읽어볼까 하는 마음을 빼앗았을까? 고민한다면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제도 주젠데 문장의 흡입력도 상당히 좋았다. 개인적으로 서술어의 중복이나 문장 연결이 어색한 부분이 없어 편히 읽었다.
너무 오랜만에 써서 글이 매우 비루하다. 그럼에도 글 쓸 용기를 심어준 이 책과 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다. 간만에 재밌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