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과 디자인에 당했다. 서점을 배회하다가 두 가지 수식어에 끌려 구매했다. “어른을 위한”과 “무삭제”. 예전에 ‘문학 수첩’에서 출간한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 『이솝 우화』 역시 뭔가 숨겨진 내용이 있는 줄 알았다. 동화와 다르게 표현이 잔인하다거나 뭐 그런 식의. 그러나 나의 기대는 단어 하나로 귀결되었다. “노잼”. 물론, 불손한 마음가짐(?)으로 접근한 나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그래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일단 “무삭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대부분 우리가 ‘이솝 우화’는 동화의 경향이 강하고, 이야기의 양이 많지 않다. 이 책은 이솝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까지 포함해서 358가지 우화로 구성되었다. 개중에는 “아, 이게 이솝 우화였어?”하는 작품도 몇몇 있었다. 어렸을 때 탈무드 동화 전집에서 본 내용이나 옛날 이야기 형식으로 들었던 이야기 등등. 또한, 여러 이야기의 기원이 되는 우화들도 많았다. 이런 부분에서 “무삭제 완역본”의 매력이 발산되었다.
“어른을 위한”은 확실히 마케팅적 요소다. 주해가 길어서 그런 건지 어쩐 건지. 세대를 구분할 이유가 하등 없는데, 그냥 “이솝 우화 전집”으로 내면 안 팔릴 게 뻔하니까 수식어를 덧댄 느낌이다. 나 같은 흑우가 있으니 이렇게 만들었겠지. 당한 내 잘못이다. 킹정하는 부분. 아무튼, 개인적으로 없는 수식어라고 봐도 무방하다.
주해도 별로였다. 우화 본편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주해는 원본에 맞춰 해설하고 있다. 그럴 거면 본편에도 원어를 추가해 놓던가. 우화와 주해가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해 읽을수록 짜증이 났다. 게다가 그 주해는 “이솝 우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내용이다. 흥미롭긴 했는데, 굳이 몰라도 우화를 읽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래도 좋은 말을 한마디 쓰고 싶으니까. 몇몇 부분만 따지면 읽기에 나쁘지 않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여우와 포도송이(a.k.a 여우와 신 포도)」의 주해는 전해들었던 것 보다 훨씬 설득력 있었다. ‘시다’는 단어의 원어인 ‘옴파케스(omphakes)’는 그리스인들이 ‘덜 익다’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했다. 때문에 여우는 ‘시다’고 변명한 게 아니라 ‘덜 익었다’고 변명했다. 물론 이 부분도 “덜 읽었다”는 문구에 원어를 같이 써줬다면 흐름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결국 좋은 말은 안 나오네. 머쓱코쓱;
마지막으로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인 부분은 우화마다 정리된 교훈이 있다는 점이다. 애매모호한 내용에 있는 교훈은 명확하게 해줘 도움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방해하기도 한다. 개인 취향의 차이로 갈리는 부분일 듯. 하루 몇 편 씩 간단하게 읽는다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종합적인 결론은 자극의 시대에 옛날 이야기는 지루하고 노잼이라는 점이다.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