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사촌 남동생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중 하나인 《마인크래프트(이하 ‘마크’》를 엄청 좋아한다. 산문 독서 촉진 겸 선물로 사줬는데, 그만 제목을 잊고 중고로 같은 책을 또 선물했다. 졸지에 두 권을 갖게 된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음 시리즈 새 책을 선물하고 중고는 내가 받아왔다. 받아온 김에 읽었다.
나는 ‘마크’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3D 멀미가 심해 조금만 플레이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유치한 게임이라는 편견과 내 취향이 아닌 그래픽도 한 몫 했다. 최장 플레이 시간이 한 5분이나 될까? 흙 깨고 나무 깨다 좀비한테 맞고 크리퍼 터져 죽은 후 멀미에 시달리며 종료한 것이 나의 ‘마크’ 경험 전부다. 그러니 그 세계관이며 조합이며 등등의 메커니즘을 전혀 모른다. 나의 남동생들이 ‘마크, 마크’ 노래를 부른 전적이 있어, 그나마 용어 정도만 얼추 알고는 있었다.
이런 사전 경험 덕분에 독서 기대치는 엄청 낮았다. 아무리 『월드 워 Z』의 저자가 썼다고 하더라도 애들을 겨냥한 소설이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쉽게 말해서 억지로 읽기 시작한 셈이었다. 그러나 대반전. 생각보다 재밌었다! ‘마크’를 전혀 모르지만, 한 소년의 모험이자 마크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생각하니 게임과 전혀 상관없는 소설로 읽혔다.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정육면체로 가득한 세상에서 눈을 뜬다. 아무런 지식도, 기억도, 물건도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며 이름 모를 섬에서 생존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실수투성이에 겁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낯선 세상도 모자라 돌아가는 방식이 전혀 다르고, 무엇보다 ‘좀비’나 ‘크리퍼’ 같은 괴물들이 나타나니까. 그러나 주인공은 차근차근 세계의 법칙을 익히며 성장해 나간다. 물론 자신의 업적에 취해 우쭐대다가 다시 모든 걸 망쳐 버리기도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종국에는 더 이상 현재의 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각오까지 다지게 된다.
주인공은 실수로부터 ‘마크’ 세계의 블록과도 같은 법칙을 깨닫는다. 스스로 ‘정육면체의 법칙’이라고 명명한 행동으로, ‘계획한다, 준비한다, 우선순위를 정한다, 연습한다, 기다린다, 인내한다’의 6가지 과정을 하나의 블록처럼 대하면 어떤 두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 깨달았다고 해서 실천까지 쉬운 건 절대 아니다. 두려움에 짓눌리거나 생존 본능이 앞서면 깨달음은 한 순간에 사라진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실천을 위해서는 늘 ‘용기’를 지녀야 한다는 점도 마음에 새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어린 시절에 꼭 필요하다. 아니, 성인이 되어서도 필요하다. 실수와 실패를 구분하는 일, 그에 대한 메타인지를 높이는 일, 늘 용기를 지니는 일 등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익히기는 쉽지 않는데, 그런 맥락에서 재미있고 쉬운 스토리로 필수 요소를 안내하는 이 소설은 자기계발의 한 장르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주제로 하고 있으니 ‘마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으며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마지막 장에 주인공이 좀비 섬을 모험하는 동안 쌓아 둔 교훈 모음집도 있다. 총 36가지로 정리되어 있으니 틈틈이 참고하기에도 좋다.
나처럼 자기계발 요소로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독서해도 썩 괜찮은 소설이다. ‘마크’의 기본적인 조합법도 서술되어 있어서 게임 지식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요즘에는 공략도, 모드도 많아서 큰 의미는 없겠지만,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하니, 순정의 맛을 음미할 수도 있겠다.
서점을 가 보니 시리즈도 많았다. 한 10권 내외 되는 듯하다. ‘마크’에 흥미가 있다면 수집의 즐거움도 느끼……려나? 아무튼 주변에 ‘마크’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