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댓가가 납득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ddocbok2 2022/07/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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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반쪽
- 브릿 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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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2
- :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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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꽤 유명한 시나리오 창작 수업을 듣던 때가 있었다. 그 수업의 종강 뒤풀이 때 강사님이 갑자기 자유 질문할 거 있으면 아무거나 하라고 한 적이 있다. 시나리오 쓰다가 막히는 부분 궁금한 거든 인생 상담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변해주겠다고.
누군가가 수업 끝나고 한동안 쉬실 텐데 뭐하시고 싶냐고 물었다. 심오한 질문도, 공부 커리큘럼과도 무관한 질문인데 강사님이 생각보다 머뭇거리면서 솔직하게 말해도 되요? 하고는 다들 그렇다고 하자 대답했다.
-여러분들 글 거지 같은데, 그걸 어떻게든 읽고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고 나아지게 하는 게 제 일이긴 한데, 그런 글 읽으면 너무 스트레스예요. 본인이 생각해도 진짜 엉망진창인 글 쓴 사람 있잖아요. 그런 쓰레기 같은 글 말고, 진짜 잘 쓴 글, 플롯 탄탄한 좋은 이야기 그런 걸 제대로 읽는 시간을 좀 주고 싶네요.
<사라진 반쪽>이 어쩌면 그 강사님 취향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진짜 잘 쓴 글’, ‘플롯 탄탄한 좋은 이야기’.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구조를 잘 세워서 만든 건축물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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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으로서의 베네핏을 항상 부러워하다가, 백인으로 살기로 한 하얀 흑인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쌍둥이 자매.
‘한 여자’가 사라지고 그녀의 진실을 찾기 위한 스토리는 오래 전부터 스토리텔링의 인기 있는 소재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화차>가 있고, 최근 방송중인 <안나>도 주인공이 부유한 사람인 척을 해서 겪게 되는 사건들과 그 인물의 심리묘사를 그린다는 점에서 <사라진 반쪽>과 같은 계열로 볼 수 있겠다. 원하는 삶을 갖기 위해 끊임 없이 죄책감 없이 거짓말하는 여자 이야기로는 <애나 만들기>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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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데지레와 스텔라 두 자매가 나온다. 학생인 둘에게 엄마는 어느날, 고등학교는 그만두고 이제 일을 하라고 명령한다. 그동안 혼자서 세 식구를 먹여살려야 했던 엄마로서는 더이상 생계라는 가혹한 짐을 혼자 지고 있을 수 없어서 한 명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꿈 많은 소녀였던 둘은 엄마가 명령한 삶에 승복할 수 없었고 이곳이 아닌 다른 삶을 꿈꾸며 어느날 함께 가출한다.
스텔라는 함께 도망친 그곳에서 얼마 안 있어 완벽하게 백인이 되기 위해 언니인 데지레를 떠나고 만다.
그리고 백인인 척을 하여 취업도 하고, 결과적으로 부유한 백인남자와 결혼도 성공한다. ‘백인인 척을 한 덕분에’ 부유하고 다정한 백인남편, 좋은 집, 예쁜 딸, 대학교수지위(이건 그녀의 노력이지만 그녀가 검은 흑인이었다면, 백인으로 보이는 지금과 똑같은 루트로 교수직이 주어졌을 것인가)를 갖게 된 스텔라. 백인의 베네핏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스텔라. 그러면서 죄책감과 불안을 느끼는 스텔라.
14년 후, 데지레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딸과 함께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그에 비해 (잘 살고 있는) 스텔라는 흔적을 알 수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던 스텔라를 20년이 훌쩍 흐른 뒤에 데지레는 뜻밖의 상황으로 만나지만, 이제 스텔라는 자신의 자매였던 예전의 스텔라가 아닌, 표면적으로는 완전히 백인으로서의 스텔라가 되어 있었다. 백인이기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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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분은 데지레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좀더 공감이 가고 피부색을 바꾼 선택을 한 스텔라에게는 거리감이 든다고 하면서 독자에 따라서 두 사람에 대해 반대의 감정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역자의 추측처럼 스텔라에게 좀더 공감이 되는 부류였다.
우리는 문학작품이나 실제 뉴스들을 통해 ‘옳은 선택이나 훌륭한 선택을 하고’ 그 댓가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는 경우를 본다. 예를 들자면 흑인들이 백인과 똑같은 대우를 해주기를 바랐을 때, 흑인들이 흘려야 했던 수많은 피의 역사를 알고 있고 그래서 의문이 든다. 옳은 선택은, 그 자신의 몸에게도 옳은 선택일까 하는.
데지레의 삶이 훨씬 더 굴곡이 많았고 스텔라는 끊임없는 거짓말 덕분에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스텔라의 삶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다면 인생은 그걸로 된 거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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