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ddocbok2's bookstory
  • 아파트먼트
  • 테디 웨인
  • 13,500원 (10%750)
  • 2021-10-20
  • : 268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작가 지망생들의 이야기'라는 소재가 주는 매혹 때문이었다. 


글을 쓰고 싶어하고, 그래서 노력해본 작가 지망생이었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글 쓰는 것,만으로 그것을 생계 수단인 직업으로 삼기에는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그리고 나면 현실로 돌아와 밥벌이가 될 법한 일을 갖는다. 


그렇지 않고 무모하게도 글로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눈물겨운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글로써 정확하게, 혹은 섬세하게 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게 팔릴 만한 것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글을 쓰는 일' 이다. 잘 쓴 것인지, 못 쓴 것인지 자신 혼자 써서는 절대 알 수가 없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끊임없는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합평, 그리고 잊을 수 없는 피드백

주인공인 '나'가 처음으로 빌리를 인지하게 된 것은 대학의 순수예술 석사과정 프로그램의 합평 시간이었다. 모두들 '나'의 소설을 읽고 잔인한 피드백을 준다. 진부하다, 모호한 예가 많다, 중상위층 징징이 같다. 하지만, 빌리만은 자신은 생각은 다르다며, 장점을 담은 피드백을 주고 이렇게 덧붙인다. 


"모르겠네요.(...) 저는 그냥 이 소설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p.22


마치 스트릿우먼파이터에서 1:1 대결에서 지고, 섹시하지 않다는 평까지 들은 팀원에게 격려를 해주는 훅의 리더 아이키 같기도 했다. "저, 할 말 있는데요. 제가 본 모습 중에 오늘 제일 섹시했습니다."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과 대고모의 배려로 살인적인 물가의 뉴욕에서 집세와 학비, 생활비 걱정 없이 창작 수업을 듣고 있는 '나'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빌리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그의 삶이, 진짜 작가의 삶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빌리가 일주일에 3-4번의 식사 준비와 청소를 해주는 조건으로 집세를 대신하기로 하고 그를 자신의 아파트로 입주하게 한다. 


-두려움에 대하여

비싼 집세를 감당할 수 없어 샤워 시설도 없는, 아르바이트하는 바의 지하 창고에 거주하며 소설가가 되겠다는 열망으로 버티며 창작 수업을 듣고 있던 빌리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나' 역시 그와 함께 해서 만족스럽다. 어느 날 술에 취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려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가장 큰 두려움은 자신을 정말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빌리는 자신의 두려움은, 결국 혼자 남게 되거나, 혼자 남지 않더라도 고독하게 살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털어놓는다. 

둘은 같은 공간을 함께 쓰지만 그 이외의 많은 상황들도 함께 한다. 결정적인 사건은, 빌리의 친척 결혼식에 함께 가게 된 '나'가 술과 마약에 취해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여성인 줄 알고, 빌리에게 키스를 하게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일이 사실은 실수였음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빌리는 모든 일을 사사건건 자신과 함께 하려는 '나'가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그리고 새로운 소설에 피드백을 달라는 '나'의 부탁에 빌리는 이제껏 다른 학생들이 자신에게 했던 피드백과 비슷한 피드백을 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는 일이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상처에서 딱지를 떼어내는 그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나한테서 뭔가가 빠져 있다고?"

"...너의 어떤 부분이 네 소설에서는 빠져 있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 네 글에는 네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가 항상 드러나지는 않잖아. (...) 약간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느낌이라는 거야.


(여기서부터 스포가 살짝 포함되어 있다.)


쇠락한 중서부 지역의 출신, 숨길 수 없던 가난이 묻어나던 빌리는 '나'의 도움으로 집세 걱정을 하지 않게 되면서 세련되어지고, 단 몇 개월만에 뉴요커처럼 보이게 된다. 그 전에도 이미 여자들에게 쉽게 어필 가능한 외모에, 아직은 데뷔 전이지만 '작가의 재능'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이미 두드러지는 동거인, 빌리. 


'나'는 알 수 없는 충동으로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훼손해버린 후, 그 일을 자신이 한 일이 아닌 것처럼 꾸미지만, 의도치 않게 그 일에 경찰이 개입하면서 모든 것이 탄로나고 만다. 


-파국, 그리고 각자 삶의 완성

이 일 이후, '나'는 아버지로부터 학비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대학을 휴학하고 예전에 일하던 잡지의 교열 편집 아르바이트를 다시 하게 된다. 둘의 동거는 끝이 나고, 20대 중반의 일부를 함께 했던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다.


우선 당장의 집세를 벌기 위해 잡지사에서 일하던 '나'는 어느덧 정식 직원이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가 1년 가량 버틸 만한 돈을 모았지만 문득 자신이 작가가 될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서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곳에서 편집 일을 계속 한다.  


세월이 흘러 40대 후반이 된 '나'는 빌리가 눈부신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대학 때 썼던 글을 장편으로 완성해서 발표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엿한 대학 교수가 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현재 남들이 보기에 혼자 남게 된, 고독한 중년 남성이 되었다. 고독한 인간.

빌리가 가장 두려워하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살다 보니 고독이라는 것이 그리 두려워할 일이 아니고 받아들일 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빌리는 '나'가 가장 두려워하던,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는 것'이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인간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덧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 역시 10대 중반부터 작가의 꿈을 꿨고 19살에 부산에 있는 대학교의 어느 창작 학과를 입학한 후 20대 중반, 졸업 후에도 계속 그 꿈을 위해 노력했었다. 몇 년 전,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성과 없고 오래된 그 꿈을 포기했다. 

어린 시절의 오래된 꿈이었기에 이 꿈을 포기하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울 줄 알았다. 이 일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없는데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담담하게 받아 들여졌다. 


나 역시 합평을 하면 동료 수강생들의 피드백으로 흠씬 두드려 맞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당시 드물게 내 글에 칭찬을 해주던 동료 수강생으로부터 얼마 전 밤늦게 연락이 왔다. 


다 같이 데뷔를 못 한 처지라도, 그 안에서조차 탁월하게 잘 쓰는 사람은 티가 났고, 그런 사람들 중 몇 명은, 몇 달 뒤 혹은 1-2년 뒤 수강생 커뮤니티를 통해 데뷔 소식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는 친절했지만, 재능 있어 보이지 않았고, 그에 걸맞게 아무런 특징 없는 글을 쓰던 동료였다. 그 역시 나처럼 데뷔를 못 했을 것이다.  


잘 지내니? 라는 그의 첫번째 질문에 네, 라고만 대답한 뒤 그 이후 이어지는 그의 말에는 답장하지 않았다. 그는 두 번 더 말을 걸었고, 그 이상 연락하지는 않았다. 


깨져버린,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나눌 만한 대화란 쓰디 쓰고, 무엇보다 진부한 징징거림 의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때까지 우리는 여러 재미난 일을 함께 겪었지만, 우리 두 사람이 밤 한가운데 고요하고 외진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 순간은 조금 더 짜릿하게 느껴졌고, 나는 빌리에게 우리 아버지가 내 수업료를 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느낀 것과 똑같이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 충동은, 빌리는 평생 동안 거리를 두고 사람들을 대해온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라는 느낌이었다. - P157
그들은 어른의 삶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나는 내 삶에 의미가 있다는 희미한 분위기라도 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단편이라는 용어가 하찮게 들릴지는 몰라도 나는 단편소설 몇 편을 쓰고 있고, 합평에서 다소 고생을 했지만 내 성장에는 도움이 됐으며, 진지한 관계는 없었지만 하룻밤 보낼 기회는 몇 번 있었다고 말이다.-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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