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에 등장하는 햄릿의 학교 동창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햄릿을 달래보겠다는 심산으로 클로디어스가 불러온,
햄릿 옆에서 별반 도움도 되지 못하다가
햄릿을 죽이려는 음모에 멋도 모르고 말려들었다가 도리어 죽임을 당하고 마는
역할로서는 조연 중에서도 제일 하고싶지 않은 역할이며 인물로서도 인생에서 뭣 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죽어가는 별 볼 일 없는 인물의 전형이다.
이 작품은 <햄릿>의 기본줄기를 바탕으로,
마치 <백투더 퓨처2>에서 마티가 <백투더 퓨처1>의 마티의 공연장 뒤를 몰래 기어가듯
<햄릿>의 이야기 뒤편에서
그 이름도 헛갈리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일개 서민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의 별 볼 일 없는 삶을
백열전구를 들이댄다는 느낌으로 초라하지만 밝게, 따뜻하게까지 조명하고 있다.
이들의 인생은 특별할 것 없지만 사소한 동전던지기에만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며
쓰잘 데기 없는 헛소리 대화를 나누지만 그걸 듣고(사실은 읽고;) 있노라면 깊은 철학적 성찰이 있고,
심지어는 근대적 과학혁명적 성과를 이미 그 시대에 발견해내곤 한다.
로젠크란츠(였나 길덴스턴이었나 영화 본 후에도 헛갈리지만ㅋ, 아무튼 게리 올드만)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과학적 발견을 하고서도 길덴스턴의 무심함에 그냥 지나가버리고 마는 장면은 굉장히 웃기지만, 이것은 단지 코미디로 끝나는 것만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은 보통사람이라는 범용함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에 위대함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일 뿐, 보통사람도 얼마든지 위대함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과학적 발견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 자체로 확대된다.
보통사람들의 인생은 그 범용의 틀에 갇혀 있을 뿐, 그것을 범용하다고 본다면 그저 범용할 뿐이고, 그것을 의미있다고 본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허망한 죽음을 맞으며 이들의 삶과 죽음이 허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이렇게 <햄릿>의 거울을 한 바퀴 돌려서 뒤편에서 바라보니, 오히려 이들의 삶보다 피범벅으로 한 자리에서 몽땅 죽어간 저 주요배역들의 삶이 더 허망하지 않은가?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의 삶은 오히려 게임과 연극, 철학 등 즐거움이 가득하지 않았던가? 주요배역들이 권력다툼을 하고 미친 흉내를 내고 하는 동안, 이들은 얼마나 삶을 충실히 살고 관찰하고 성찰했던가?
팀 로스와 게리 올드만의 콤비플레이는 무척이나 웃긴다.
저 구석에 묻힌 초라한 조역들을 끄집어내 먼지를 털어, 따뜻하게 빛을 비춰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