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과 양육 (2003)
올해 1월 25일에 중고로 구매한 뒤 한동안 책장에 방치했다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했다. 출간된지 15년이 지난 후에 읽은 셈인데 왜 이제야 읽었는지 아쉬운, 아주 좋은 책이다. (한국어판은 2004년 9월에 출판)
우리 인간을 만드는 것은 본성인가? 양육인가? 유전자인가? 환경인가? ‘이 책은 20세기에 걸쳐 100년 동안 계속되어온 본성 대 양육 논쟁을 파헤쳐 그 뿌리와 배경과, 발전 과정을 서사시처럼 보여준다.(옮긴이의 말 391p)’
이 책에서 저자는 본성 대 양육 논쟁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위대한 과학적 발견과 놀라운 각성의 순간들을 소개하면서 (로렌츠의 새끼거위, 할로우의 원숭이, 미네카의 장난감 뱀, 인젤의 들쥐, 지퍼스키의 파리, 랜킨의 선충, 홀트의 올챙이, 블랜차드의 형제, 모핏의 어린이 등등,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모두 어느 한편의 승리라고 못박기가 불가능 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양육을 통한 본성(nature via nurture). 즉, 유전자는 양육의 중개인이며 본성(유전자)은 단지 양육(환경)을 통해서만 효과가 발휘됨을 주장한다.
저자의 관점이 뚜렷하고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풀어나가는 점이 좋았다. 오래된 책이지만 신선하게 다가오는 내용이 많았는데, 특히 미네카의 장난감 뱀과 꽃, 비디오테이프를 이용한 ‘준비된 학습’ 실험과 ‘사회생물학’을 쓴 에드워드 월슨에 관한 일화를 자세히 소개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두어군데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 원서를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구글에서 미리보기가 지원되지않는 책이라 불가능했다. 편집상의 실수가 분명한 괴상한 문장도 한군데 있었는데 읽을때 표시를 해두지 않아 지금은 찾기가 힘들다. 그렇긴해도 원서가 출간되고 1년만에 번역본이 나온 것을 감안하면 전체적인 번역은 좋은편이라 생각한다. (원서를 읽지 않았으니 강하게 주장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 꼭 읽고싶어진 것이 이 책의 정신적 쌍둥이라 할 수 있는 ‘빈 서판’인데 (빈서판 쪽이 먼저 태어났다) 주제가 비슷한 책을 연달아 읽으면 기억에 남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입자 동물원’을 다 읽은 후에 읽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