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능에 관해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하려면 우리는 두 사람의 사상가를 반드시 지나야 한다. 아니 두 사람의 사상가라기보다는 두 조류의 사상을 만나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 둘은 지능으로부터 시작해서 언어, 도덕, 음악과 미술, 건축에 이르기까지 인간 고유의 것으로 알려진 '문화 (culture)'와, 인간이 동물임으로 인해 자연스레 짊어지게 된 굴레로서의 '유전(gene)' 둘 사이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취한다.
두 사상의 한쪽 편엔 리쳐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을 비롯한 다윈의 나라 영국전통의 적응주의자들이 포진하고, 그 반대편엔 스테판 제이 굴드, 리쳐드 르원틴, 노엄 촘스키 등이 포진하고 있다. 도킨스일당 (Dawkinsian)과 굴드일당(Gouldian)사이의 혈전은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 (원제 Dawkins vs. Gould)>를 통해 접할 수 있으므로 그 설명은 생략하고 언어에 관해 대립하고 있는 둘을 간략히 소개해보자.
언어학의 아버지 촘스키는 언어의 기원, 아니 언어를 가능하게 한 우리 뇌의 진화를 우연으로 본다. 진화를 단속평형과 대멸종이라는 현상으로 깊은 시간(Deep Time: 스테판 제이 굴드가 인류의 제4혁명이라고 부르는 고생물학의 깊은 시간의 발견을 의미한다) 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굴드 역시 두뇌의 진화를 일종의 우연으로 파악한다. 촘스키나 굴드에게 있어 언어나 미술 음악 등의 인간이 가진 경이적인 '재주'는 우연히 커진 두뇌가 만들어 낸 부산물 (byproduct)이다.
그러나 스티븐 핑커를 위시한 일련의 진화심리학자들에게 있어 (사실 진화심리학을 범적응주의 (Panadaptation)이라고 공격한 것도 굴드다. 분명 구대륙과 신대륙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는 이 미묘한 사상사적 대립은 문화적 연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나 자신 아직 정확한 분석을 시도해 본적은 없으나 이 두 조류에 관한 문화사적 분석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우리 두뇌에 불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두뇌는 인류의 조상이 홍적세를 거치며 적응해 온 산물이며, 언어 또한 그 존재가 주는 이익으로 인해 선택된 적응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핑커에게 있어 언어가 단순히 커진 두뇌에서 나타나는 부산물일 수는 없다. 핑커는 이러한 그의 생각을 <언어본능 (원제: The Language Instinct)>를 통해 철저히 분석하고 있다. 언어에 관해서라면 굴드나 촘스키는 사실 이미 핑커에게 무릎을 꿇었다. 언어는 진화의 산물이며 적응주의로 매우 훌륭하게 설명되는 흔적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진 다른 특성들은 어떠한가? 도덕, 음악, 미술, 그리고 지능에 관해서 도킨시안과 굴디안은 과연 어떤 대립을 펼치게 될까? 도킨스주의자들에게 당연히 그러한 형질들은 자연선택된, 자세히 풀어 설명하자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되어 유전된 것이다. 그리고 굴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적응주의적 관점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우연적 설명이 끼어들어갈 틈을 노린다. 굴드에게 음악이나 미술은 그리고 지능까지도 (굴드의 지능에 관한 생각은 최근 번역되어 널리 읽힌 <인간에 대한 오해(원제 :The Mismeasure of Man)>에서 읽을 수 있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자면 굴드는 지능의 특성을 유연함, 즉 plasticity로 본다. 굴드에게 있어 지능이란 서열화될 수 없는 자유로움인 것이다. 그의 이러한 우연에 대한 강조는 때때로 과장되고 비과학적인 설명으로 나아갈 때도 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것들 모두를 감내하고도 굴드의 휴머니즘에서 배울만한 것이 많다) 두뇌의 부산물로 파악된다.
도대체 이들은 왜 싸울까? 영국식 경험론과 대륙 합리론의 전승일까? 아니면 영국식 자유주의자들과 미국식 사회주의자들의, 즉 요즘 남남분열이라 흔히 말하는 보수 대 진보 간의 대립일까? 굴드가 "민중을 위한 과학"이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의 절친한 동료 르원틴이 그 단체의 주요인사였다는 것과, 도킨스와 그의 추종자들 (예를 들어 <이타적 유전자 (원제: Origin of Virtue)>의 저자 매트 리들리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다. 그가 <회의적 환경주의자 (원제:The Skeptical Environmentalist)>의 저자 비예른 롬보그를 지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설명의 단초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다윈이라는 걸출한 영웅을 가진 영국식 진화론과 다윈을 가지지 못한 미국식 진화론의 대립일까? 하지만 내 눈에 다윈은 그 두 사상을 모두 포괄하는 지적 영웅이다. 둘간의 대립은 결코 화해될 수 없는 깊은 그 무엇이 아니다.
다윈의 위대한 두 저서 <종의 기원>과 <인류의 유래와 성선택>, 이 두 저서를 가지고 이 두 사상사적 조류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물론 단순화된 비유다. 두 저서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도킨스던 굴드던 <종의 기원>은 그들의 바이블이니까.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다윈의 후기 저작 <인류의 유래와 성선택>이 그 둘간의 화해를 -적어도 인간의 특성에 관한 대립에 있어서만은- 시도할 단초를 제공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보기에 <메이팅 마인드>는 그러한 화해의 첫걸음이다. 물론 제프리 밀러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적응주의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성선택은 생존을 담보로 한 전쟁적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와 같은 이미지를 제공한다. 보기에 따라 성선택으로 설명되는 두뇌의 진화는 적응이기도 하며 우연이기도 한 것이다. 도킨스와 굴드 양자 사이에서 "생존"이라는 전투적 이미지를 제거하고 나면 둘은 그다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며, 이러한 제거의 빈 공간에 우리는 얼마든지 성선택을 끼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과학적 사실들이 모두 참인 것은 아니다. 과학이란 절대적인 그 무엇은 아니며 더욱 합리적인 설명이 제시될 때 기존의 이론은 과감히 물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현재 인간의 특성을 설명해 주는 최고의 이론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도킨스의 말대로이다. 내 눈에 제프리 밀러가 제공하는 설명은 완벽해 보이며, 그것은 도킨스와 굴드의 화해를 위한 첫걸음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