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의마치 #도서협찬
#정한아
"내 말 못 믿는 거 같은데, 난 미치지 않았어요. 미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고 병원비로만 수천만원을 쓰고 있다고요. 오늘은 내 생일이에요. 아침부터 정말 이상한 하루였어요. 몸무게는 하루 사이 4킬로그램이 늘었고, 텅 빈 가방을 들고 외출한데다, 그 대가로 만 원짜리 지폐에다 사인을 해야 했죠. 그러고 집에 돌아와보니 아파트에 내 도플갱어가 있는 거예요. 이해가 돼요?"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요." (중략)
"이곳엔 수많은 당신이 있지만, 전부 당신이라는 존재의 허상일 뿐이에요. 거울에 비친 상과 같죠. 그러니까 도플갱어 어쩌고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유일하고 고유해요." _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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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간을 도둑맞은 건지, 도로 찾은 건지 모르겠어." _232p.
3월 생이라, March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60번째 생일을 맞이한 이마치의 생일날 아침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성공한 노년의 배우 '이마치' 그러나 삶의 무수한 파도를 넘어 그녀에게 남은 건 넓고 텅 빈 집과 알츠하이머라는 병이었다. 과거의 시공간을 복원한 가상현실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 하는 그녀는 아파트 건물을 오르며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가상의 공간을 안내하던 아파트 관리인 '노아' 와 함께 아파트를 돌아보며 층수에 해당하는 나이의 이마치가 거주한다는 걸 알게 된다. 아들을 잃고 아파하던 이마치,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던 이마치, 데뷔해 천부적인 연기 능력을 인정받던 이마치, 모친에게 학대당하던 이마치, 그리고 갓 태어난 이마치...를 현재의 이마치는 과거의 이마치들을 만나며 당시에 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전하고 행동하며 만족스러워하게 된다. 복원된 과거 속에서 이마치는 원하는 걸 찾았을까?
영화보다 강렬한 삶을 살았던 그녀가 끝내 놓지 못했던 잃어버린 아들, 그보다 더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언니의 죽음과 엄마의 학대. 살아남기 위해 연기를 했고 연기자 생활을 통해 유명세와 재력을 쥐었지만 생의 끝자락에 남은 건 무엇이었을까? 그녀만을 위한 특별한 세트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긴 시간을 살아낸 자신과의 오롯한 마주 보기가 아니었을까? 그런 그녀의 곁을 조용히 지키는 사람,(평생에 이런 한 사람만 있어도 좋겠다.) 생각지 못한 결말까지... 삶이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매 순간을 채우는 행위와 감정을 고통 그 자체로만 느낄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친절한 이방인』이후 8년 만의 신작 『3월의 마치』, 역시 정한아, 파도같이 몰려왔다 썰물처럼 쓸려나가는 몰아치는 감정을 경험해 보길 추천하고 싶다.
여자가 떠난 뒤에도 이마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겨우 여자가 사라진 철문 쪽을 바라보았다. 이마치는 그 여자를 알았다. 샤넬의 잠자리 선글라스를 낀 여자, 그 여자는 바로 이마치였다. 마흔세 살의 이마치. _76p.
"이건 꿈이 아니에요. 과거죠."
노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쌓인 과거요." _99p.
"죽음이 어떤 건지 알아?"
이마치는 영원히 젊은 그 청년을 놀리듯 물었다.
"알죠. 그건 고장난 엘리베이터 같은 거예요. 깊은 어둠 속을 한없이 하강하다가 마침내 쾅, 부서져버리는 거요." _127p.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나요? 우리가 같은 사람이 맞아요?"
40층 여자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이마치가 그 말에 대답하기 전에 방에 있던 일곱 살 이마치가 밖으로 나왔다. (중략)
이마치는 다른 여자들도 그애를 보며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다만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매끈하던 선이 뭉개지고 지워지는 과정, 조밀하던 이목구비가 흐물거리고 늘어지는 과정, 환했던 빛이 점차 희미해지는 과정. _213p.
자식을 잃은 여자들은 유령을 긴 양말처럼 질질 끌고 다닌다. 신지도 못하고, 벗지도 못하고, 그것이 점점 커져 자신을 삼킬 때까지 기다린다. (중략) 그녀가 기억을 잃고, 말하는 법과 옷 입는 법, 심지어 인간임을 잊는다고 해도 그녀를 떠나지 않을 영혼, 그 영혼에 대한 앎이다. 그러한 앎은 사라지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른바 축복이자 세례이며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_2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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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