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위그든 씨의 사탕 가게
  • 걷는자의 꿈, 존 뮤어 트레일
  • 신영철
  • 13,500원 (10%750)
  • 2009-08-21
  • : 432

환경재단에서 일하면서도 나는 존 뮤어를 몰랐다. 환경 혹은 환경단체, 환경운동 등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의 시간이 없었다. 핑계를 대자면, 그랬다. 면접과 동시에 인수인계, 출근과 동시에 실무를... 해가 질 무렵이면 열이 나던 시절. 그 시간 보낸 후, 정말 우연이었다. 다른 일을 더 할 생각은 없었다. 후배를 위한 통화였고, 그냥 재밌는 인터뷰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섰는데, 늦었다. 오랫만의 인터뷰, 처음 인사할 때부터 내공이 만만찮아 보여 솔직히 약간 긴장도 했더랬다. 그런데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공통점을 만나 풀려나갔다. 내게 환경영화제를 택하게 한 그 영화 <빛의 사진가, 안셀 아담스> 그리고 그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시에라클럽을 만든 사람, 그가 존 뮤어고 그가 찾아낸 길이 존 뮤어 트레일이었다. 존 뮤어 트레일은 수없이 많은 곳을 여행한 그가 최고의 숲으로 꼽는 곳이다.  

일순 빛이 튀던 순간도 있었다. 날카로웠던 순간도 있었고, 우문에 내가 괴로웠던 찰나도 있었다. 짧지만 내게 많은 것을 던진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그는 나즈막히 "큰 서점의 가셔서 시간이 나시거든 <걷는 자의 꿈, 존 뮤어 트레일>이란 책을 찾아서 캡션과 찍은 이의 글으 한 번 읽어봐 주세요." 그리고 사진을 배우러 오라고 했다. 나에게 대뜸 지인들과 계획 중이라는 일을 제안했다.   

다음 날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광화문에 있는 큰 서점이 지척이건만 그냥 클릭해버렸다. 그리고 원고를 쓰기 전에 다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책이 아니더라도 원고꺼리는 넘쳤다. 인터뷰에서 들은 주옥같은 얘기들 중 활자화된 건 정말 한 조각뿐) 하루종일 읽었다. 그리곤 티켓을 끊어놓은 것 뿐, 아무런 준비도 않던 제주 여행에서 내가 뭘 해야 하는 지 알게 됐다. 뭘 하고 와야 하는 지 어렴풋이. 

그가 말한 등산가와 알피니스트의 차이(등산가는 산을 '정복'하지만 알피니스트는 산과 '함께' 걷는다. 그래서 평화롭고 풍요롭단다). 빛, 마음의 본질. 그런 것에 왜 그리도 힘을 주어 말했는지. 그 짧은 시간동안 왜 그리 나를 이해시키려 하고 나는 어떻게 그걸 이해했던 것인지. 인터뷰때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던 손등의 상처는 어떤 의미인지. 책이 다 말해주었다. 아니, 사진이. 캡션이. 그 인터뷰는 그를 위한 것도, <체어맨>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누군가 살짝 예비하셨는지도. 
 책장을 덮을 즈음엔, 나도 정말 존 뮤어 트레일을 완주한 것만 같았다. 한껏 산림욕을 한 듯, 충전되어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런 여유와 넉넉함을 내게 주었다. 감히 존 뮤어 트레일을 완자하고 싶다는 꿈은 안 품는데, 그 길의 고단함과 넉넉함은 책만으로도 참 좋다. 그러니 실제는 얼마나 더 좋을까?
역시나 티켓을 끊어놓은 것 외에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있는 7주간의 유럽 나들이. 아마 이 책이 다시 내게 힘이 될 꺼다.
존 뮤어는 '산을 오르는 것은 마음의 본질을 오르는 것'이라고 했단다. 그게 본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주의 어느 오름을 오를 때 난 비워지긴 했었다. 숨이 찼고, 사람이 반가웠고, 말이 신기했고, 말들 사이를 어떻게 빠져나갈까 외에는 일상의 잡생각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본질. 유럽의 오래되고 눅눅한 도시의 돌길도, 그리고 떼제도, 아마 그런 걸 내게 줄 거다. 

2010. 6

> 마음의 본질로 향하다

CHAIRMAN 2008 07+08/ THEME_숲

마음의 본질로 향하다
여행작가 이겸

[전문] 처음 그에게 궁금했던 것은 카메라 앞에 선 기분이었다. 거대한 자연을, 수많은 사람을 피사체로 만났을 그가 정작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어서는 좀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정말 모든 궁극은 통하는 것일까? 사진을, 걷기 여행을 업으로 하는 그가 펼쳐놓은 것은 뜻밖에도 존재에 관한 사유였다. 

수없이 많은 곳을 여행한 그에게 최고의 숲은 존 뮤어 트레일(이하 ‘JMT’)이다. 세계적인 환경단체인 시에라 클럽의 창시자인 존 뮤어는 ‘산을 오르는 것은 마음의 본질을 오르는 것’이라 말했다. 이겸에겐 카메라가 그렇다. 사진을 찍다 보면 사물의 본질을 보게 된단다.
“어릴 때부터 질문이 많은 아이였어요. 사진작가니까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왜 찍어야 할까 궁금했죠. 그런데 눈에 보이는 표현이 전부라면 너무 허무하잖아요. 내가 찍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지는 거죠.”
본질을 보려면 빛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작업에는 공통되는 원리가 있는 법. 이야기가 재미 있으려면 구성이 좋아야 하고, 노래를 잘 하려면 발성이 좋아야 한다.
“상황과 배경에 따라 사진을 찍는 방법이 수백, 수천 가지라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통 원리가 바로 빛이에요. 거리도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진에서 40-50%가 불필요한 것인데, 남을 의식하지 말고, 피사체와의 거리를 좁혀보세요. 사진이 심플하고 아름다워지죠.”
다양한 피사체, 수많은 여행지를 두고 그는 왜 하필 숲으로 갔을까? 자연산 숭어를 낚아 먹고, 모기장 텐트에서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잠들고, 사막을 걷느라 열이 오른 몸은 호수에 풍덩 뛰어 들어 식히는 여정. 그저 이야기로 듣고 사진으로 보기엔 꿈결만 같다. 하긴 도시 거주민에겐 모든 여행은 꿈이고, 숲은 로망이다. 하지만 장장 358km(서울에서 대구 거리), 해발 3,000-4,000m를 넘나드는 JMT를 걷고 또 걷는 것은 현실이었다. 자야 했고, 먹어야 했고, 아프지 말아야 했고, 곰도 사슴도 다람쥐도 조심해야 했다. 그러려면 필요한 모든 것을 이고 지고 가야 했다. 거대한 자연 앞에 낯을 가리지 말고 볼 일도 잘 봐야 한다.
“숲에는 사람이 줄 수 없는 치유력이 있어요. 가르쳐주지 않아도 배우는 게 있고요. 작은 모래조차 거대한 바위가 길고 긴 세월 동안 시나브로 존재가 없어지면서 만들어진 거잖아요. 나무는 반대죠. 작은 떡잎에서 시작해 점차 존재를 쌓아가다가 가장 견고할 때 부러지면 결국 모래처럼 미약한 존재가 되어버려요. 거대한 존재의 집합인 숲 앞에서는 모든 것이 어리광일 뿐이에요.”
그렇게 숲을 걷다 보면 도시에선 들을 수 없는 소리도 들리고, 혼자 걸어도 외로운 게 아니라 풍요롭다고 느끼기도 한단다. 그래서 그는 차츰차츰 걸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완주하라고.
그를 만나고 온 날, 제주올레를 준비하며 쌓던 배낭의 짐을 계속 덜어냈다. 노트북도, 책도, 화장품도, 옷도 모두 덜어냈다. 한적한 숲길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낭만을 꿈꿨으나, 그저 숲과 바다와 함께 거닐다 오면 될 뿐일테니.






찍은 이가 사진에 덧붙인 글들
  걷는 자에게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앞으로 걸어가느냐, 뒤로 돌아가느냐. 길 위에 선 자에게 쉼표는 있으나 마침표는 없다. 15  나는 자연인가? 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달팽이처럼 걷는 것이 첫 시작. 26  홀로 가는 길이 풍요로운 것은 숲과 함께 걷기 때문이다. 36  물은 산을 깎아 바위를 만들고, 그 산은 모래가 된다. 네바다 폭포의 야망은 쉼이 없다. 38  홁이 되어가는 나무의 냄새가 참으로 평온하다. 58
 나무는 쓰러져 여행자의 길잡이가 되고, 숲의 거름이 되어간다. 67  산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주어지는 생경한 풍경은 매우 달콤했다. 유혹에 순응하며 기꺼이 탐한다. 99  길을 낼 때는 자연 스스로 복원 가능한 최소한의 상처만 남긴다. 이것이 빌려 쓰는 자의 예의. 101  섀도 레이크의 빛과 향이 짙은 것은 나무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무의 마지막 여정이 호수에서 시작되고 있다. 119  살아있는 향기는 빛이 나고 언제나 생생하며 매순간 변한다. 다른 삶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향기로우며, 삶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릅답고 풍요로운 향기로 남는다. 숲의 향기는 살아있는 이와 죽은 이의 하모니로 하나가 된다. 성숙하고자 하는 죽음은 향기롭다. 121  자연의 질서에는 관용이 없으며, 여타의 감정 개입도 없다. 하여 너무도 풍요롭고 때론 잔인하기까지 하다. 144   걷기 여행의 매력은 무엇보다 소리를 만나는 것에 있다. 더욱이 이렇게 찬란하게 부서지는 소리는 한없이 고요한 상태에 이르게 한다. 158  꺽이고 부러진 채 만신창이가 된 모습도 숲의 얼굴.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몫도 그의 것이다.  188  여행을 하다보면 영혼의 무게를 알게 된다. 맑고 가벼운 이를 만나는 반가움을 무엇에 비하랴! 바로 지금! 213  지름길의 유혹에 빠지면 무릎과 허리를 비롯한 모든 관절이 통증을 호소할 것이다. 225  죽을 것이다. 하지만 앞 날을 두려워 마라. 너는 충분히 풍요로움을 누릴 것이며, 네 부모처럼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아가야! 언제나 충실히 지금을 살아라! 삶이란 단 한 번으로 족하단다. 241  길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제든 제자리로 돌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45  나도 태양도 하루씩 더 살았다. 그리고 그만큼 성숙한 모습으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참으로 고운 빛이 내려온다. 259   갈증이 침조차 태워버릴 무렵 샘물을 만난다. 보석보다도 귀한 물이 반짝인다. 260  여행할 땐 감당할 수 없는 짐은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 263  마지막까지 움켜쥔다면 얼마나 추한 것인가? 264   호수가 멈추자 시간도 멈춰 서고, 공간의 경계도 사라진다. 때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어느 것 하나 먼저 이동할 때 실체는 드러난다. 268 동행이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큰 행운이며, 그것을 느끼는 사람은 현명한 이이다. 273  스스로 인정하고 용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길을 걷는 동안 자신을 향한 격려와 용서를 구하는 기회를 만든다면 더없는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292  종착지가 가까워 올 때 아쉬움이 크다면 그 여정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그 날이 유일한 하루이다. 이미 사라진 별을 보며 아름답다고 하는 것처럼 사라진 후에도 향기는 빛난다. 내일 만날 휘트니를 바라보며. 315  커다란 돌덩어리 위에 집 한 채, 사방에 엎드린 낮은 산들, 그리고 오래 머물 수 없느 치열한 환경, 정상의 모습이다. 하여 정상을 끝끝내 유지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319


찍은 이의 에필로그

p.332-335
  또 다른 길을 꿈꾸는 자의 질문 

소중한 여행으 ㄹ함께 한 일원으로서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그것에 대한 짧은 글을 쓰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는 순간 이처럼 잠깐의 공간이 주어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걷는 동안 지니고 다니며 발전시키고자 했던 질문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어떠세요?

동행
어느 순간이 되자 혼자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걷고 있더군요. 가끔씩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요. 저마다 은색 실을 이용해서 제 배낭을 들어 올려주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땐 가볍게 산을 넘을 수 있었지요. 함께 걷는 이들은 현재 살아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서로를 깊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들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동행이란 물리적인 테두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이와 동행하고 계신가요?

관계
상대방과의 관계는 어떤 상태와 조건이 되어야 끝이 날까요? 누구든 어떻게 하면 끝나는 것일까요? 필요에 의해서 또는 육체나 정신의 변화에 의해서 그리고 시간과 죽음에 의해서 관계가 끝나지는 않습니다. 서로의 죽음에 관해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그때의 관계는 호기심으로 남겠군요. 관계는 일방의 의사나 행위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거나 증오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움과 증오, 외면과 시샘의 관계 또는사랑과 연민, 존경과 배려의 관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표현
웃음이 터져 나올 때처럼 그렇게 화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는 이 땅의 교육과 풍토는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발전시키지 못합니다. 웃음을 참는 것보다 화를 참는 것이 더욱 해롭습니다. 화를 내는 올바른 방법과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화는 자신의 상태를 나타내는 언어입니다. 언어를 잘 전달해야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화를 통해서도 소통할 수 있겠지요. 화를 내며 단절의 신호를 보내는 것은 낮은 단계의 언어입니다. 수위와 속도를 정하고 화를 낸다면 자신의 현재 상태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면, 이미 화를 다스렸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다양하게 현재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것은 건강한 것입니다. 몇 가지 감정과 몇 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싶으신지요?

상실
무엇을 잃게 되면 당황하게 됩니다. 때론 그조차도 감지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게 되지요. 준비되지 않았거나, 예견되지 않은 경우 더욱 깊은 상처와 상실감이 남습니다. 영영 치유되지 않을 것처럼 말입니다. 이때 애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기회와 기간을 가져야 합니다. 슬품에 바진 나머지 당사자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주위의 깊은 관심과 애정이 담긴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애도의 기회와 기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다면 상실감은 언제든 마음의 병을 키우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곤 몸의 아픔으로 표출되게 됩니다. 애정이 있든 없든 슬픔을 빨리 벗어나라고 종용하는 것은 그의 기회를 뺏는 것입니다. 상실을어떻게 넘기고 계신가요?

성숙
첫 번째, 무엇이 되려 하는가?
두 번째, 삶의 목표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세 번째, 어디까지 가려 하는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건과 단계를 거치며 나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성숙은 나이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상태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가 궁금합니다. 저의 몸이 멈추게 되었을 때, 제가 어떤 상태까지 성숙되어 있을지 지켜보려 합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과정을 온전히 밟아 나간다는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과정 자체가 성숙의 단게이닌까요. '성숙'에는 한계 지점이 없습니다. 끝없이 나아갈 수 있고,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순행할 수도 있고, 거꾸로 퇴보할 수도 있겠지요.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시겠습니까?




 01 해피아일스에서 머스드 갈림길까지

p. 55
 
이미 존 뮤어는 헤츠헤치 계곡을 보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직관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무형의 가치에 주목했던 존 뮤어. 물질만능적 가치관으로는 결코 세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통찰한 그는 야생의 자연이 갖고 있는 심미적인 효용성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 사이의 내재적 관계를 알고 있었다.

헤츠헤치 댐 하나를 짓는 데 무려 50년이 걸렸다. 열린 공간에서 건설의 타당성에 대한 토론과 검증을 거친 게 반세기나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긴 세월을 거쳐 논의했음에도 결국 그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뒤늦은 후회가 따르고 있다.

시에라 클럽의 국제담당 부회장인 미셜 페로는 그런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일시적인 선동이나 분위기를 바탕으로 다수의 요구라는 미명하에 졸속으로 자연을 개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5년도 아니고 50년 동안 토론하자고 하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알맞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헤츠헤치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미리 겪었던 이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앞서 간 사람들의 실패 경험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일단 저질러놓고 나서 후회하며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지 않은가?



04 투올룸 메도에서 도나휴 패스까지

p.96-97
  산다는 건 끊임없이 발을 놀려야 하는 일이다.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쉬면 넘어지고, 무너지는 게 자전거 아닌가. 이처럼 원하든 원하지 않던 끊임없이 페달을 밟는 것이 인생길.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날들을 잊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 떠나 온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와서도 매일매일 쫓기듯 바쁘게 움직여야 하다니! 그렇지만 그런 투덜거림은 속으로 삼킬 뿐 입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06 로살리 레이크에서 어퍼 크레이터 메도까지

p.141
  자연의 회복은 대단히 빠르다. 불탄 나무 등걸 아래느 이미 그 나무의 어린 싹이 자라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며 문득 불교가 주장하느 윤회의 개념이 떠오른다. 나무라는 개체는 소멸하지만 그 뒤를 잇는 어린 나무들을 본다. 몇 천 년을 반복해 왔으므로 그게 사실적 윤회 아닌가. 세코이아 나무의 단면을 잘라 살펴보면 몇 백 년 전에 일어난 산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세코이나 나무껍질이 두꺼워 불에 잘 견디기 때문에 거듭된 산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직격탄을 맞아 홀라당 타버리면 별 수 없겠지만, 꼿꼿하게 서서 불타 죽은 나무들이 흡사 어느 몰락한 신전의 음침한 기둥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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