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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짐승
<오페라거리의 화가들>은 19세기 프랑스 미술사를 주요 작품들과 함께 소개한다. 클래식한 분위기를 내고 싶은 가을이라 그런지,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 다소 버거워 보이던 책장이 무리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점점 흥미로워졌다.

무슨 파니 무슨 주의니 하던 무미건조한 시대의 구분은 더 이상 그 이름뿐이 아닌 다채로운 시각적 자료의 형태로 내 머리 속에 남기 시작했다. 모든 작가와 작품의 이름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여러 그림들의 색채가 희미한 덩어리로 뭉뚱그려져 각 시대 나름의 분위기로 기억되는 것이다. 신화의 이야기를 극적인 구성으로 담은 신고전주의의 엄격함과 몽환적인 상상력으로 완성된 낭만주의의 부드러운 선의 흐름, 이전 시대와는 다른 눈으로 고대의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 작품의 대상을 찾아내기 시작한 사실주의 작가들의 시선, 현실의 단면을 보다 주관적으로 담아낸 인상주의 작품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광선들_

설명을 듣고 보는, 무엇 하나라도 알고 주의깊게 보는 그림은 확실히 재미가 있었다. 솔직히 그림을 보면 무엇이 아름다운 건지 몰랐었다. 왜 똑같은 대상을 조금씩 다르게 그리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무 것도 모르고 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그림일 뿐이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알면 알수록 더 보인다는 것이 무엇일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을 보는 것은 아름다움과 그것을 만들어 낸 사상을 함께 보는 것- 의미와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의 조류가 보다 현실적이고 주관적인 것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나는 그림들 속에서 점차 화가들의 시선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시대의 풍경 자체와 그 시대를 보는 눈-정확히 말하자면 시대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눈이다. 즉, 화가들은 그들이 살고있는 시공간을 바라보는 법을 정립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곧 모더니티- 근대의 시선이다. 고대의 신화와 영웅에서 상상의 오리엔탈리즘을 거쳐 그들이 주시한 것은 도시 혹은 농촌과 같은 그들 자신의 공간과 현재의 순간이다. 노동자와 부르조아를 통해 사회 부조리를 보여주거나 강가에서의 점심이나 거리의 카페 같이 사소한 도시 풍경의 한 장면들을 제시하며 마치 스냅샷과도 같이 일상 풍경과 인물의 단면을 담아낸다. 혹은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장면대신 하루해가 뜨고 지는 순간에 받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미묘한 인상을 추상하여 담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림 속에서는 점차 자라나는 모던한 인간인 '개인'과 개인이 느끼고 만들어 나가는 '모더니티(근대성)'가 드러난다.

19세기 근대 미술의 흐름에 동시대를 같이 한 '사진'이 더해지면 모더니티의 성격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근대의 발명품인 사진은 기록이나 보도 이외에도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장면을 담는 역할 등을 담당하며 확장, 발전해왔다. 내가 사는 지금 이 시대에까지, 자신의 모습과 사소한 일상, 자신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 단편적인 이미지- 근대 화가들의 시선을 닮은 스냅샷은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관심의 수준을 넘어서 이미지에 대한 개인의 욕구는 폭발적으로 넘쳐나고 있다. 보다 간소화된 미디어를 가지고 쉴새없이 무엇을 담아내는 우리들의 욕구는 어디서 흘러나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하고 생각했다. 회화에서 사진 그리고 영상까지-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은 또다른 욕심일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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