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 교수이자 크리스천 작가인 우종학 박사가 쓴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책이다. 정확하게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크리스천들에게 “유신 진화론”을 소개하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무신론 과학자들은 기독교를 향해서 무분별한 공격과 비난을 퍼부어 왔다. 이 책은 그 도전에 대한
응답이요, 한 개인의 신앙고백이며 지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안일한
태도와 무책임으로 일관했던 크리스천 과학계에 경종을 울리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입문서라 기대했던 것보단 내용이 쉽고 깊이가 얕은 책이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후속작도 목차를 확인해보니
기본적인 내용과 골격은 비슷해 보인다. 평소에 관심이 가던 저자의 책이라서 시험이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루 만에 읽었다.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믿음을 잃어버린 한 청년
기자가 어렸을 적 주일학교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대학교수가 된 은사를 만나서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하나의 전제를 세우고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과학은 중립적인 학문이어서 신과 자연, 그리고 성경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을 유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점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많은 현대인들이 과학과 신앙의 대립구도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영향, 한국 교회에 만연한 반지성주의와 무관심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과학은 신의 존재여부에 대해 침묵한다. 아니 침묵해야만 한다. 같은 태양을 보더라도 한 사람은 초월적인 신이 존재한다고 상상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사람은 그 반대를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과학자는
후자에 해당된다. 과학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는 과학을 쉽게 무신론 편에 들게 하였지만,
저자는 과학자들 중 상당수가 불가지론자이거나 크리스천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아인슈타인도,
얼마전에 작고하신 스티븐 호킹 박사도 신에 대한 질문을 끝내 놓질 못했다. 그리고
중세시대부터 과학발전을 주도해나갔던 세력이 기독교라는 역사적 사실도 간과하지 않는다.
자연과 성경은 각각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다. 하지만 자연을 해석하는 것은 과학이고,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신학이다. 두 학문은 전혀 다른 방법론으로 별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같은 질문에도 상이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과학은 자연현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초첨을 맞추는 반면, 신학은 자연현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예를 들어 진화과정은 과학이 설명해줄 수 있어도, 진화의 초기와 원인에 대한 담론은 신학이
감당해야 마땅하다. 이 두 가지만 분리해도 어느정도 지적 혼란은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단 한번도 신앙과 과학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받은 적이 없다. 두 학문은 양립할 수 있으며 여러 학문의 도움을 받아 더 폭넓은 신에 대한 이해에 다다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크리스천은 과학연구의 업적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요지이며 유신 진화론을 옹호하는 기본적인 자세다.
저자는 진화, 진화이론과 진화주의가 각각 다르다고 설명한다. 진화는 자연현상을 말하고,
진화이론은 그것을 정리한 과학적 이론이며, 진화주의는 세계관의 성격을 띤 정신적
흐름을 의미한다. 그리고 "틈새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는 주로 창조과학 지지자들이 본인들 주장의 빈틈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표현이다. 하나님을 기적이라는 영역에 제한해버려서 자연현상을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을 때에만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단정짓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래서 연구에 의해 인과관계가 드러나게 되면
하나님의 역할이 축소되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창조과학론자들과 리처드 도킨스 같은 무신론 진화주의자들이
곧잘 빠지게 되는 함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기적으로도 일하시고 창세 전에
미리 정해 놓으신 자연원리와 물리법칙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지 결코 연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유한한 인식적 틀 안에 가둘 수 없고, 도리어 이해할 수 없는 분이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늘 논란의 중심을 차지하는 창세기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창세기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방법, 구조,
연대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셨지만, 넷째 날에 빛의 근원인 해와 달을 만드셨다. 이 구절은 과학적 원리에 명백하게
어긋난다. 하지만 저자는 창세기가 창조물들이 "왜"
만들어졌으며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기능적인 것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다고 말한다. 창세기를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으며, 그 당시의 우주관과 풍습, 언어와 번역의 한계 또한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과학자로서 과학의
한계 또한 분명하게 지적한다. 빅뱅이론과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발견했지만,
과학은 여전히 우주, 생명과 의식의 기원을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아담의 원죄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나 창세기를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에 대한 설명은 복잡하므로 그냥 넘어간다.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의 현주소,
그리고 그에 대한 기독교 내에서의 우려와 적절한 반응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도 담겨있다. 크리스천들 중에 진화-창조 논란에 조금이라도 호기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을 만한 책이다.
챕터들마다 있는 요약정리, 토론문제와 추천도서 목록은 이 책을 더욱 가치있게 만든다.
교회모임이나 스터디 그룹에서 같이 읽어도 좋겠다.
세계관은 철학적 신념이나 가치관이라 부를수 있고, 신학적 지식을 실천척 학문으로 정리한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가끔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했다가 상대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길 때도 있지만, 분명히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동시대에 공존하고 있으며, 믿음체계와
사상이 다른 타인과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역시 타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다채로운 시각적 견해들에 대해 부지런히 공부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굳게 믿는 것이 나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안다면, 독서를 통하여 신앙과 교리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를 해보는 시간도 가져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