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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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zymed님의 서재

이제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기를 쓴다.


폭풍이 한 차례 대륙을 지나가고 추운 날씨도 주춤해질 때즘, 레지던시 인터뷰 시즌도 드디어 막을 내렸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이 시간이 내 앞에 성큼 다가오자 여러 복잡한 감정과 기분에 휩싸였다. 이 느낌은 뭐지? 불안함, 그리고 설레임. 이젠 다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 휴식에 대한 갈망,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아쉬움, 아내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어찌 이리 복잡할 수가. 그래도 다행이다. 하나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어쨋든 하나님의 은혜로 이 과정을 지금까지 잘 버텨낼 수 있었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졸업을 한다.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소망하게 되는 이 시기를 나는 지금 잘 보내고 있는가. 과연 내가 내린 선택은 옳은 결정이었을까. 그에 대한 책임을 난 온전히 다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내 인생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게 되었다. 바꿀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 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쉴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히 독서다. 읽고 싶은 책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가격을 메겼다. 그리고 100불 단위로 묶어서 구매계획도 세웠다. 100불 어치를 4번 정도 사면 지금 내가 당장 읽고 싶은 책들은 다 커버할 수 있다. 근데 역시 무리다. 대학원 시절 내내 읽지 않고 사재기한 책들이 40권은 족히 넘는다. 그것들 중엔 묵직하고 두꺼운 책들도 많아서, 이젠 책장에 꽂아놓고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어질 지경이다.


요즘 유시민의 책들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플로리다에 갇혀서 호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5일 동안 이북으로 다운받은 작가의 책을 속독했다.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데다 하소연하는 모습이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와 작가에 대한 애정이 다시 싹트였다. 그건 일종의 인식의 변화였고, 늘 견지해왔던 글쓰기와 독서에 대한 내 태도에도 어느 정도 균열을 일으키게 한 아주 운 좋은 만남이었다. 그러니깐 난 제대로 독서를 한 셈이다. 그렇게 화가 나고 어의가 없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난 글을 읽고 있었고, 작가와 함께 호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느낌이 좋았다. 외롭지 않아서.


유시민의 책은 예전에 4권 정도 읽었고, 지금 세어보니 안 읽은 책이 열댓권이나 된다. 지식습득의 목적보단 글쓰기와 독서 훈련에 더 적합하다고 느껴져서 그의 책은 꼭 챙겨 읽는다. 앞으로 전부 차근차근 읽어나갈 생각이다.


수고 많았다. 엄숙히 결과를 기다리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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