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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광야
  •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 김영수
  • 9,900원 (10%550)
  • 2009-09-01
  • : 239

갖다 붙이면 다 말이 되는 어휘가 있다. 민주주의도 그런 어휘중 하나다. 사람들은 아무 데나 민주주의를 갖다 붙인다. ‘민족적 민주주의’, ‘지역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후불제민주주의’, ‘정당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민주주의’ 등등. 지난 20여 년간 민주주의는 어쨌든 좋은 거였다. 그래서 아무 데나 갖다 붙여도 되는 어떤 거였다. 그야말로 ‘민주화’, 즉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도상에 있던 시절의 ‘시대정신’, 누구나 내걸던 ‘슬로건’이었던 것이다.

그 민주화의 시절, 사람들은 큰 틀에서 민주 편과 반 민주 편으로 갈려 있었다. 그 민주/반민주의 구도는 대체로 잘 들어맞기도 했지만 양편에 환희와 좌절을 번갈아 안겨주기도 했다. 민주를 외치는 건 군복을 벗은 독재자들이나 한때 야당 정치인이었던 대통령 모두 마찬가지였다. 모두 민주를 외치되 그 속내는 달랐던 것이다. 또 당연하게도 사람마다 혹은 정치정파마다 어떤 민주주의를 향해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필남필녀가 모두 다른 생각을 품었고 그래서 갑론하고 을박하면서 어쨌든 여기까지 왔다. 20년을 축약하자면 그렇단 얘기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 하나 바뀌자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고 나라가 떠들썩하더니 이내 전직 대통령 두 명이 죽고 여기저기서 “민주주의의 위기”가 회자된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던 이들조차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읊조리며 조용히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이 와중에 김영수의 새 책 『민주주의를 혁명하라!』는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책 제목이 괴이하다. 앞에 붙는 말은 달랐겠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하자!’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던 8~90년대의 말법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2000년대의 말법도 아닌 ‘민주주의를 혁명하라!’라니. 민중민주주의 혁명하자고, 아니 일반민주주의 혁명 정확히는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하자던 얘기는 들어봤어도 민주주의를 혁명하자니. 여기에 이 책이 지닌 의의가 있다. 민주주의를 설정된 어떤 목표로 간주하거나 이미 형성되고 확보된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관점을 거부한다.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또 넘어설 수 있다고,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하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국민으로 구성된 노동의 힘을 끊임없이 확장시키고 그 힘으로 관철시키되 그 내용은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서 구성되는 것이라고 일관되게 말한다.

이 책은 그 상상의 방법을 헌법, 국가, 선거, 정치라는 네 가지 장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선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다수의 통치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소수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헌법, 국가, 선거, 정치를 혁명하라고 한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주의를 혁명적으로 상상하자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게 민주주의야?”, “혁명이 필요해!!”라고 너무나 많이 술집 넋두리로 늘어놓지 않았나 반성해본다. 민주화 되었다는 현실에 대한 환멸, 그리고 혁명적 변화에 대한 열망,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혁명,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 현실성 있는 상상을 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상상력의 결핍은 모든 정치 활동을 ‘권력’을 잡는 문제로만 한정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의 활동 반경을 제한했으며 결국 가진 자들의 정치처럼 우리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노동조합 위원장이든 결국 그건 왕초 뽑는 건데, 왕초 하나 뽑는다고 궁극적으로 세상이 매우 달라진 적이 없다는 사실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 정부가 언제 노동자 탄압을 그만뒀던가? 또 노동자, 민중의 힘에 의거하여 통치를 하고 그 힘을 더 확장시키는 계기로 작동했던가? 그런 적 없다. 왕초 하나 다른 이가 뽑힌다고 해서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모두 알다시피 궁극의 변화는 왕초가 뽑히기 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사이 속에서 일어나야 하고 씨 뿌리고 밭을 가는 구체적 실천 속에서, 구체적 현장 속에서 먼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실천 속에 우리 상상력이 결합되면 박토를 옥토로 가꿀 수 있다. 혁명이든 민주주의든 그건 매우 구체적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 상상의 단초를 이 책은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매 쪽마다 보여주고 자극한다. 그 상상의 단초가 현실이 되냐 마냐 하는 문제는 책을 읽은 독자의 몫이다.

저자 김영수는 촛불 집회에 함께 나가서 마주친 딸, 그리고 수많은 청소년/소녀로부터 이 책을 쓸 자극을 받았다 말한다. 아마도 그 자극은 새로움을 열망하는 많은 이들이 지난 20년 동안 성취해놓은 현재의 우리 민주주의가 혁명적으로 변화할 필요를 자극한 것일 게다. 그렇다. 민주주의의 끝이 이 정도라면, 이런 민주주의를 위해 피흘린 이들의 죽음은 개죽음이다.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고 더 나아가야 한다. 이 책과 함께 그 시작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으로 우리 민주주의를 혁명해보자. 즐겁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마치 20여 년 전, 시퍼랬던 우리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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