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나 털보 영화감독 김용태가 만드는 영화에 출연할 때도 윤여정은 노상 대기실이나 촬영장 근처로 우리를 찾아 놀러 올 정도로 별 볼일 없는 처녀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군 생활 중반 이후, 그러니까 최영희가 하와이로 떠나가고 난 후부터는 대한민국의 방송계와 영화계가 온통 윤여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판국으로 변해버렸다.
문희, 남정임, 윤정희가 구가하던 트로이카 시대가 서서히 서산을 넘어가고 윤여정이 독야청청 동산 위에 떠오른것이다. 내가 아직 군바리 신세로 <학당골>이라는 유신 홍보극단의 일원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동안 그녀는 틈틈이 강부자 · 여운계·김영옥 선배들 틈에 끼여서 나를 찾아 놀러왔는데, 사람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옛날과는 영 달랐다. 그녀는 스타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기분이 우쭐했다.
그러다가 윤여정은 정말 혜성처럼 나타난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로 굳어졌다. 윤여정은< 화녀>라는 단 한 편의 영화로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대스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가 장희빈이나 〈민비〉를 열연했을 때에도 그저 좋은 역할을 운 좋게 맡아서 깜찍하게 연기를 한다는 느낌 정도였는데, 영화 <화녀>에서는 더 이상 잔말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냥 졸지에 대스타가 된 것이었다.
<화녀>이후에 출연한 <충녀>등으로 그녀는 대종상과 청룡상의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양 손에 거머쥐게 되었다.
그것은 믿거나 말거나 그 당시의 실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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