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의 영화를, 그것도 아주 긴 영화를 본 느낌이다. ‘호러, 공포소설’ 장르가 익숙하지 않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게 대체 무슨 얘기인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속도가 붙기시작했고, 무려 천여페이지에 달하는 두 권의 책을 순식간에 읽어내렸다.
이 책은 아버지 후안과 아들 가스파르의 여행길로 시작한다. 다소 이상한 조합이고, 몹시도 어두운 느낌을 받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사랑하는 아내이자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은 것이다. 그런데 이 교통사고는 석연치 않다. 누군가 살해한 것 같다. 왜일까?
(약간의 스포가 있음)
후안은 사실 어둠의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영매, 이른바 메디움이다. 기사단으로 통칭되는 특정 가문들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메디움을 필요로 한다. 메디움은 훈련을 받음으로써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어둠의 신이 간택하는 것으로 당연히도 그 희소성이 높다. 가문 사람들이 대대로 메디움을 찾아다니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는 이유이다. 이것이 몇 세대에 걸쳐 이어져왔고, 각 세대마다 거쳐간 메디움도 여러명이다.
그러나 후안은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브래드퍼드가의 로사리오와 결혼하며 어느정도 정상적인 삶을 보장받는다. 아들 가스파르는 아버지의 능력을 물려받았는데, 당연하게도 후안은 이 사실이 기사단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둠에게 자식을 바칠 수 없으므로. 후안과 가깝게 지낸 기사단 가문의 소수의 조력자들 또한 이러한 사슬을 끊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기사단이, 혹은 그 누구라도 가스파르를 찾지 못하게 방해하는 조처를 취한다. 그래서 가스파르는 안전해졌는가?
이 책에서 제례, 후안이 열수 있는 어떤 문들, ‘다른 곳’, 폐가 등이 등장할 때마다, 그 묘사들을 볼 때마다 난 조금씩은 진저리쳤던 것 같다. 불쾌하기도하고,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섭기도 하고. 등장인물들도 그렇지만 공간에 대해 상상이 이어졌다. 이걸 영화화하면 어떤식으로 구현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애플tv에서 드라마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니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책에서 갈무리한 몇 구절…
“세상의 모든 부는 타인의 고통 위에 쌓아 올린 것이다”
“네 아빠는 많은 고통을 받았었지. 힘든일을 많이 겪다보면 사람이 냉소적으로 변하기도 한단다”
“얘야, 우리는 누구든지 실패한단다. (…) 인생은 생각과는 달라”
“연약함에 널 내어주지 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