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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할 책

원츄~! 펴자마자 이 책에 ‘쎄게’ ‘꽂혀’버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있다. 그가 대식가이든 미식가이든, 여성이건 남성이건, 채식주의자건 비만인이건... R선생처럼 먹는 일 자체를 경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빼고. 먹거리(먹기+먹는 파티+먹는 곳+요리하기+여행하며 먹기+누군가에게 해 먹이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소장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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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기행’류의 글을 누구나 쓰고 싶어하고 또한 쓸 수 있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블로그는 어설픈 ‘맛집’ 탐방기와 아마추어 사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또한 이미 황석영ㆍ성석제처럼 글재주 좋은 많은 작가들이 음식에 대한 책을 썼다. 그런 글들은 주로 기억과 개인적 취향을 주제로 한다. 한편으로 <헝그리 플래닛-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는 세상의 그러한 글쓰기와 사진 찍기의 궁극에 있으면서, 또 한편으로 그런 류들과는 완전히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다. 

무엇을 잡아먹거나 사먹는가, 그리고 거기에 얼마나 돈을 쓰고 어떻게 요리하는가? 또한 누구와 같이 먹으며, 먹고 나서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적 차원을 넘는다. 먹는 일을 둘러싼 관계만 ‘문화-정치’를 드러낼 수 있다.

세계 24개국, 30가족(주로 중하층이라 설득력있다.)의 600끼니를 직접 탐방하고 유머러스한 기행기와 질 높은 사진으로 담은 이 책은 ‘굽고 삶고 볶고 튀기’는 잡식동물로서의 인류에 대한 가장 훌륭한 보고서임에 분명하다. 또한 먹는 일을 둘러싼 모든 민감한 가장 정치적이며 동시에 문화적인 현안을 대부분 담고 있다. 

그것들은 글로벌 자본주의와 세계정치, 역사와 문화전통, 세대와 계급의 문제이다. 이 책을 통해 패스트푸드 제국주의, 육식의 윤리성, 당뇨와 식품자본, 바다 윤리 등과 같은 핵심적인 정치적 사안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수십년 간의 경력을 바탕으로 하여 수년간에 걸친 ‘프로젝트’로서 씌어진 이 책은 그래서 외국에서 이미 여러 가지 상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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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러나 완전히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역사적 전통 하에서 살아가는, 그러나 점점 비슷해지고 있는 세계의 ‘인간’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글+사진)는 꽤 충격적이기도 했다. ‘타인의 삶’이 거기 확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가자미를 미역국에 넣고 끓이는가 아닌가, 김장김치에 갈치를 넣어도 되는가 아닌가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화해’가 쉽지 않은 차이도 거기 있다. 

에콰도르와 그린란드의 가족들은 내가 평생 절대 못 먹어볼 거 같은 희귀한 음식들을 먹는다. 기니피그 훈제 고기와 바다표범 스튜, 북극곰 고기 등. 해마, 염소불알, 불가사리 튀김 같은 중국 음식들은 그래도 멀지 않은 미래에 먹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영국과 인도의 어떤 가족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별로 먹고 싶지 않은 것들을 주로 먹는다. 쌀을 먹지 않고 빵으로만 탄수화물 섭취원을 삼는다거나 브라만계급이라는 이유로 고기는 전혀 먹지 않는다. 

한편 차드와 부탄의 가난한 가족들은 너무 못 먹는다. 수단에서 쫓겨난 차드 피난민들이 먹거리를 위해 쓰는 돈은 일주일에 1,120원이고(나머지는 유엔지원으로 나오는 배급품) 부탄에서는 4,620원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어떤 사람들은 반대 방향으로 너무 못 먹는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질 낮지만 가장 효율적으로 대량생산되어 급하게 칼로리를 공급하는 맥도날드ㆍKFCㆍ버거킹ㆍ타코벨에서 만든(또는 배달한) 치킨과 피자, 코카콜라를 ‘일용할 양식’으로 먹는다. 미국인들이 패스트푸드에만 쓰는 돈은 부탄 사람들 전체 식비의 10배나 된다. 배운 중간층인데도 그렇다. 미국인들의 식생활은 너무도 강력한 식품자본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어서, 자신들의 끔찍한 식생활과 그 결과(소아 당뇨비만, 성인병 등등)를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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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일의 평등과 불평등은 정확히 주변부와 중심의 차이, 그리고 지역 내부의 계급적 격차를 반영해내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의식주에 결부된 일상문화가 얼마나 큰 정치적 문제를 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슬로우푸드와 거리 음식, 가정요리, 채식 등의 앞날은 어둡다.

미국식 식문화에 저항하는 일, 그것은 매우 어렵지만, 마치 스크린쿼터문제처럼 ‘문화다양성’ 문제의 핵심일 수 있다. 이는 비단 ‘좋은 차이’를 보존하는 중요한 일뿐 아니라, 자본이 삶의 모든 것을 규율하는 미국식 삶에 반대하는 것과 연관이 깊다. 그러나 그 문제는 아직 잘 안 보인다. 그것이 개인에게는 죽고사는 문제(건강)와 바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http://blog.naver.com/heutekom
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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