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린든'(Barry Lyndon)
감독 : 스탠리 큐브릭
출연 : 라이언 오닐, 마리사 베렌슨
1975년도

스탠리 큐브릭의 모든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현재 스코어 나의 큐브릭 영화 베스트 3를 꼽으라면 '시계태엽 오렌지', 풀메탈 자켓(고개를 갸우뚱하실지도 모르겠으나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의 '미키마우스 노래' 중창과 주인공의 내러티브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의 마지막 장면과 아울러 큐브릭이 보여준 냉소 미학의 극치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꼽고 싶다.
18세기인가 19세기인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긴 그까짓 연대기적 수치 따위 여기서 기억해서 뭣하겠는가만은 하여간 한때 유럽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피카레스크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서사방법은 그 어떤 영화와도 다르게 매우 독특하다. 마치 영화로 만든 한편의 그림책, 또는 칼라로 그려진 삽화가 많이 들어간 이야기책과도 같다.

이야기 서술에서 나레이션이 차지하는 커다란 비중. 이에 곁들여서 단편적으로 보여지는 배우들의 연기장면, 아울러 정지화(=삽화)를 연상하고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화면구도와 미장센. 거꾸로 가는 클로즈업(이걸 영화 전문용어로 뭐라하나)을 통하여 강조되는 회화적 구도의 칼라풀한 풍경 등등
실내촬영시 카를 짜이츠에서 특별제작한 렌즈를 사용, 전혀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은 이른바 '촛불조명'으로도 유명하다.

결투에서 시작되어 또한번의 결투로 결말지어지는 이 한 사내의 (전혀 사실성 내지는 진실성, 그리고 드라마에 대한 시리어스한 접근이라고는 없는)파란만장한 인생을 영국의 정원문화가 한창이던 시대를 배경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매우 유려하게 그리고 있다. 더구나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내의 파천황 인생을 그리는 큐브릭의 방법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고 독특하다.
요즘이야 오닐하면 누구나 샤킬 오닐을 떠올리겠지만, 라이언이라는 이가 오닐 성을 대표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미 지금은 대학생들의 학부형이 되어버린 세대들이 대학생이었던 시절, '러브 스토리'라는 유치한 삼류급 최루성 드라마와 당시 젊은이들의 미국(상류 백인문화)에 대한 맹목적 동경을 무지하게 자극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었던 그. 이 영화에서 별 볼일 없는 배우라도 감독의 지시에만 잘 따르면 얼마든지 인상깊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잘 보여주었다. 이에 비하면 'Gangs of the New York'의 재능있는 배우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의 지리멸렬한 모습은 이와는 정반대의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