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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다락방
  • 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
  • 패트릭 허치슨
  • 16,920원 (10%940)
  • 2026-02-09
  • : 5,470

*출판사로부터 책을 선물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집 한 채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부동산 투자 얘기가 아니다.

중고장터에서 산,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을 고치다

결국 목수, 오두막 건축가가 된

어느 남자의 이야기다.


<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의 저자

패트릭 허치슨의 꿈은 여행작가였다.

그러나 인류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냉혹한 현실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집세와 건강보험료를 내기 위해

지역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급여는 괜찮았고,

자주 바뀌기는 했지만 여자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안락한 삶에 안주할 수록

'이게 맞나?'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다 천만 원도 안되는 돈으로

충동적으로 구입하게 된

숲 속의 오두막 한 채가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사실 그가 이 책에 써 놓은 내용과

책 앞부분에 나온 사진을 보면

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오두막(cavin)이라고 했지만 헛간(hut)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오두막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화장실도 없으며,

수도도 없다.

지붕은 비가 오면 샌다.

진입로는 진흙밭이고,

마을에 들어오는 진입로는

산사태로 1년 가까이 봉쇄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 오두막을 사랑한다.

아니, 연민한다고 해야 맞을까?

그는 기초가 썩어 기울어지고, 지붕이 새고,

문도 제대로 안 닫히는 이 오두막을

절대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썩어서 사라지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연민에서 비롯된 것 만은 아닐 것이다.

툭하면 월세가 더 싼 곳으로 이사해야 하는

도시의 거처과 달리 이곳은 오롯한 내 소유 아닌가.


그렇게, 목공도 전혀 모르고,

계산이랑도 담 쌓은 문송한 도시의 카피라이터가

초보목수가 되어

볼품없는 오두막을 고치고 돌보게 된다.


친한 친구들과 틈날 때마다 그곳에 머물며

부족한 곳을 채우고,

망가진 곳을 고치면서,

그는 위로를 받고,

상처입고 지친 마음을 셀프치유한다.

깊은 숲이 주는 위로,

인터넷은 커녕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고요한 고립 속에서 얻는 위로,

친구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자유롭게 놀면서 얻는 위로....


육체적 고생을 하면서

현재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도 느끼고,

자신을 보잘것 없게 생각하는

마음의 상처도 셀프치유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어떤 삶을 원하는 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패트릭 허치슨의 글은 쾌활하고 유머러스해서

빌 브라이슨을 연상케 한다.

미국식 농담이 좀 실없기도 했지만,

빌 브라이슨을 좋아하는 나는

그 문체가 좋았다.


그리고 저자의 솔직한 문장 속에서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는

청춘이 잘 드러나 있어 공감했다.


열심히 사는데도, 항상 허전한 마음.

문득 당황하게 하는 길을 잃었다는 감각.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상실감.

내가 판 함정이 매년 더 단단해진다는 절망감.

SNS 속 사람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며

초라한 나와 비교할 때 느끼는 부끄러움.


하긴. 청춘만이랴.

나도 여전히 방황한다.

절망하고, 당황한다.

나이 먹으니 그것을 드러내기

조금 더 부끄러워졌을 뿐이다.


그가 오두막을 고치고 돌보며

느낀 것은 아래와 같다.

사무실, 책상, 컴퓨터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있어도 오두막이 선사하는 가능성이 폐소공포증을 잠재웠다. 완벽한 탈출구가 있다고 생각하니 탈출하고 싶다는 욕구도 전보다 잠잠해졌다.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이면 터널 안의 시간도 견딜 만해진다고 하지 않던가.125쪽

오두막에서는 모험을 즐기는 낙이 있었고 집에서는 여유롭게 뒹구는 낙이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편안함은 삶에 뚜렷한 대비를 더해줬다. 뭐라고 딱 집어서 정의하기는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주변에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141쪽

오두막 자체가 일종의 추억 앨범이 돼 있었다. 벌어진 틈과 거친 절단면, 위어진 못과 헐거워진 나사는 좋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점점 나아지는 티가 났다. 발전이 있었다. 벽 패널 사이의 틈도 우리가 벽을 한 바퀴 빙 돌며 작업하는 동안 조금씩 좁아졌다.192쪽

일상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과 달리 형체가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감각은 우리의 가슴에 깊고도 깊은 만족감을 남겼다.273쪽

오두막은 조용히 우리의 감정을 부추기는 응원단 같았다. 내면에 있는 자기 의심의 찌꺼기를 치우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들어갈 공간이 만들어졌다.285쪽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에는 상항 성장통이 뒤따랐다.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목적이 있는 배움이었다. 내게는 최종 목표가 있었다. 어딘가에 답이 존재했다. 충분히 노력하면 나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서 앞으로 몇 년은 암흑의 숲에서 오두막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311쪽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땀과 노력은 수십 년간 이어질 결과물로 바뀌었다. 사무실에서 이메일을 작성해 수천 명에게 보내도 내가 받을 수 있는 관심은 30초가 최대였다. 대부분은 삭제로 끝났다. 하지만 계산에 디딤판을 고정할 때는 달랐다. 이 행위는 평생에 걸친 이야기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었다.357쪽


디지털 부호로 전송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릴 것이 아닌,

실체가 있는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만족감과 충족감은

저자 패트릭 허치슨을 초보목수로 만들었다.


그리고, 책에 나온 첫 오두막을 판 후,

땅을 사서 오두막을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

초보목수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한 순간에 변하는 인생이 있을까.

그렇지만 언젠가 변화의 순간이 온다.

그것은 단단한 바위를 쪼개는 것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처음엔 정을 박는 것 자체가 힘들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망치로 한 번 두 번 내려치다 보면,

점점 틈이 벌어지고 마침내,

큰 소리를 내며 쪼개지게 된다.


마음이 불안하고 힘들 때

나는 무엇으로 위안을 얻나.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나.

나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가.

나를 어디에 정을 박아 넣어야 할까.

생각하며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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