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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新又日新
  •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
  • 한상연
  • 15,120원 (10%840)
  • 2026-07-01
  • : 500
나는 산책하듯 세상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한다. 목적지를 향해 걷다가도 길가의 작은 변화에 발걸음을 늦추는 사람처럼, 삶에서도 뜻밖의 장면 앞에 오래 머무는 편이다.

빠르게 직진하기보다 길가의 꽃에 눈이 간다. 동네책방에 들러 책등을 훑어보고, 도서관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볼 때 숨이 쉬어진다. 창작집단과 독서모임을 오가며 친숙한 이의 낯선 생각을 듣고, 마주친 한 문장을 기록해서 간직한다. 내 삶은 그렇게 계획보다 우연에 조금 더 기대어 흘러왔다. 눈에 띄는 성취가 없어도, 책을 통해 세계와 만나고, 느리지만 깊은 방식으로 성장하는 일. 그런 삶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무더운 날이 이어져서인지, 졸업이 가까와서인지, 문득 평소와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세속적인 성취보다 이런 삶을 택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회피였을까. 내면의 성장을 추구한다는 말 뒤에 세상을 향한 두려움을 숨겼던 것은 아닐까.

정신분석을 공부하며 내면을 탐구하고, 꿈과 무의식을 이해하려 애썼다.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언어로 바꾸는 일에 몰입해 왔다. 그러다보니 내 삶의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내면에만 기울어져 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그 깊이가 과연 세계를 향해 열리는 통로가 되고 있었을까.

한 번 떠오른 생각은 씁쓸함과 함께 나를 자주 찾아왔다. 뜻밖의 자괴감이 나를 조금씩 물들여갈 때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를 만났다.

이 책은 내 의심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중요한 것은 성취냐 실패냐가 아니라 '어떻게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가'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비중을 두었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렸다.

창작집단과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일. 동네책방과 도서관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일. 그것은 세상을 피해 숨는 시간이 아니라 내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 맺는 시간이었다.

세상에 참여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하고,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혼자 있는 편이 훨씬 쉽다. 하지만 조금 힘을 내서 작은 불편을 견디고 돌아오면 나는 언제나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다른 이의 향기가 내게 묻어오고,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를 만나 나의 지향점이 새롭게 다듬어진다. 수많은 만남과 우연이 남긴 흔적을 품은 채로 삶의 반경은 넓어지고 존재의 궤도는 확장된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내가 소중히 여겨 온 삶의 태도를 철학의 언어로 다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아가 꽃이나 하늘 혹은 타인이 나에게 일으키는 아주 사소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p.104

세상을 정복하려 애쓰기보다 세계와 관계 맺고, 우연을 기꺼이 맞아들이며, 타인을 만나며 조금씩 변하는 삶. 하이데거는 그 또한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겨 온 삶은 세상을 회피하는 삶이 아니라, 성과보다 만남을, 경쟁보다 의미를, 효율보다 존재를 선택해 온 삶이었다.

이 책은 내가 삶을 크게 바꾸어야 할까 고민할때, 그간 내가 걸어온 길을 조금 더 신뢰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중요한 것은 외부적 성공을 얼마나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세계와 얼마나 진실하게 만나고 있는가'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내면은 혼자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만나며 더욱 살아난다. 내면을 깊게 가꾸어 온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깊이를 품은 채 세상으로 더 자주 걸어 나가는 일이다. 산책자는 방관자가 아니다. 세계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걷는 사람이다. 어쩌면 존재하기란, 산책하듯 걸으며 자신과 세계 사이에 나만의 오솔길을 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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