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향한 깊은 경외와 숭배를 지극히 아름다운 언어들로 낯설고도 슬프게 그려낸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은’,
이 행성에 존재하는 지성체들의 고통과 고독, 상실에 이르는 여정을 아버지 시오와 9세 자폐 아들 로빈을 통해 이야기한다.
“나의 슬프고 특별하며 갓 아홉 살이 된, 이 세상과 잘 맞지 않는 아들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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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이 행성의 모든 지성체는 멸종할 것이며, 지구는 멸망한다.
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온몸으로 버텨내는 이가 있다.
어른이 아니다. 아이다.
세상에선 '아스퍼거,' ‘자폐,’ ‘ADHD,’ ‘강박증 장애’ 등으로 분류되는 아홉 살 아이 로빈.
로빈은 ‘살아 있는 것들에게 유난히 예민한’ 성정을 갖고 있다.
로빈이 애착을 갖는 것은 ‘자연’ 그중에서 ‘동물’이다.
광우병 걸린 소들의 이상행동을 영상으로 보기만 해도 벽에 자신의 머리를 찧고, 아버지가 운전하다가 실수로 친 다람쥐의 사체를 보며 광분하고 자학하는 아이.
천사처럼 온순했다가도 까닭 없이 분노를 터뜨리며 아버지의 손을 물어 피를 내기도 하는 로빈은 세상과는 섞일 수 없는 아이다.
“나는 온 세상에서 로빈을 제일 잘 아는 사람에게 탄원할 수밖에 없었다. ‘얼리사.” 십일 년하고 반 년 동안 내 아내였던 사람. “얼리사.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줘. 숲속에서 함께 있을 때는 괜찮지만, 로빈을 집으로 데려가기는 두려워.” (56)
아버지 시오의 헌신적인 사랑이 가슴 아플 정도로 애절하다. 로빈의 폭주를 막기 위해 미지의 행성들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는 시오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그들의 고립지에서나마 아들과 교감한다.
로빈이 가장 많이 닮은 아내 얼리사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상태다. 얼리사는 동물들의 인권을 수호하는 몇 개의 NGO 단체를 이끌기도 했고, 국회 앞에서 수없이 시위를 하기도 한 행동가였다.
아내와 대한 사랑과 그 사랑 이면에 숨겨진 의심과 슬픔, 자폐 아들 로빈의 발작과 치료, 그 모든 과정이 이 행성이 지닌 부조리와 부조화와 충돌하며 갈등의 격랑을 타지만,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확신해온 지성체에 내재한 희망과 생명력의 상징인 야생의 숲, 오직 그들만이 경험한 자연의 신비와 그 압도적인 당혹감(bewilderment)이 빚어낸 그곳으로 동행한다.
“우리가 해친 것을 치유합시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303)
자연의 한 종으로써, 생명의 처음과 끝으로써, 한때와 영원으로써, 숲의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로빈의 고통스러운 예민함과 부서짐은, 이 기형적인 행성에 호소하는 자연의 몸부림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연구자들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이 살 수 없다고 알고 있던 곳에서 생명을 찾아내고 있었다. 생명은 끓는점 위에서나 어는 점 아래에서도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75)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 내 아이에겐 내가 필요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386)
세상은 낙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하면서도, 이 세상이 짊어진 고통, 아직 오지 않은 예고된 고통에 대한 방관과 무심함에 대한 경고를 아홉 살 자폐 소년의 몸에 처절하게 새긴 소설가의 이 잔혹하고도 슬픈 서사를 어찌하면 좋을까.
세상에 오직 단 두 사람만이 사는 행성.
그 이름은 지구가 아니라 고독이라는 것을.
“모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없는 행성이 하나 있었다. 그 행성은 고독 때문에 죽었다. 그런 일이 우리은하에서만 수십억 번이나 일어났다.” (386)
‘새들은....“은 파워스의 전작 ’오버스토리‘의 연결 선상에 있는 소설이다.
역자의 후기를 참고하자면, 원제 Bewilderment의 유래도 그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 소설 또한 나무들, 숲의 세계와 인간이 초래한 환경 문제를 조명하여 강렬한 울림을 선사한 것으로 안다.
자연에 대한 강한 메시지는 내가 읽었던 파워스의 1995년작 갈라테아 2.2에서는 없었기에, 이후 긴 시간 동안 작가의 관심과 사유를 지배한 것들을 엿볼 수 있던 이번 소설은 큰 수확이 있었다.
갈수록 고통과 슬픔의 강도가 세진다는 것과, 불확실성에 대한 헤맴의 여정이 여전히 계속된다는 게 리차드 파워스답지만.
그의 차기작이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