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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시내
  •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 무라세 다케시
  • 12,600원 (10%700)
  • 2022-05-11
  • : 9,952


#세상의마지막기차역 (2020, 2022) by #무라세다케시 #모모

무라세 다케시의 소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삭막한 세상, 인간에 냉소하는 마음들에 정공법으로 눈물을 터뜨리는, 거짓말처럼 아름답고 세련되게 신파적인 네 편의 연작 소설집이다.


*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탈선한 열차 사고로 죽은 나의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

그건 바로 가장 가까운 역에서 출몰하는 유령열차에 오르는 것이다.

유키호라는 여고생 유령이 나타나 안내한다. 단, 네 가지의 조건이 있다.

산 자는 이미 죽을 운명인 망자를 데리고 나올 수 없다. 만약 하차시키려고 하면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망자에게 곧 죽을 것을 알려줄 수도 없다. 만약 산 자가 내리지 않으면 망자와 함께 사고난 지점에서 죽게 된다.

여기 네 명의 산 자가 있다. 약혼자를 잃은 자, 아버지를 잃은 자, 연인을 잃은 자, 그리고 남편을 잃은 자.

느닷없이 찾아온 이별에, 제대로 된 작별인사나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그들은 그리움이 불러온 유령열차에 올라 망자와 마주하는데…….

각 단편의 화자들은 저마다 인생의 상처와 아픔이 있는 이들로서, 망자는 그들의 삶에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을 법한 절망 속에서 그들이 오른 유령열차행은 슬픔의 애도보단 빛나는 추억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곧 덮칠 ‘죽음’이란 그늘을 떼어내고, 오직 그 순간, 함께하는 간절한 시간의 영원성을, 평생분의 소중함을 서로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일본 장르소설 중 타임루프물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보이 밋 걸 류의 타임루프물은 시중에도 여럿 나와 있다.

사실로 말하자면, 이 소설을 처음 펼쳤을 때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한 소년이 소녀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런 라이트노벨 류의 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네 편의 연작소설, 그것도 같은 열차사고로 소중한 이를 잃은 화자들의 저마다의 사연이 유려한 문체로 이야기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은 변했다.

작가는 망자의 입장이 아니라 산 자의 입장으로 망자를 설명함으로 감동을 배가하고, 상처받은 이들, 약한 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듯이 따뜻한 문체로 스며들게 했다.

첫 단편은 너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만을 그려내어 좀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그런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감각조차 상실한 우리에게 사랑의 섬세한 면면을 볼 수 있게, 떠올리게 한다.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고,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는 거야. 극적이라 할 만큼 거리를 좁혀가는 방식이 대단히 멋지거든. 무엇보다 무수히 많은 사람중에서 나를 선택해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214)

세 번째 단편은 첫 번째와 비슷한 맥락을 띈다. 그래서인지 몇몇 인물이 겹쳐서 등장한다. 역시 사랑은 숭고하다는 것, 완전한 사랑에 대한, 한층 깊은 슬픔과 애틋함을 담고 있다.

다소 현실적이었던 두 번째와 네 번째 단편은, 화자 주변을 둘러싼 세상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살아야 할 희망조차 앗아가는 현실에서 망자를 마주해야만 하는 고뇌와 회한을 담은 세 번째 단편,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너무도 사무치게 다가오는 네 번째 단편.

소설은 ‘시간을 되돌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을 골자로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말하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목숨과도 같은 소중한 것을 말하기 위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된 열차 사고를 끌어왔는지도 모른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가장 솔직하고 가장 순수하기에.

유난히 자연재해가 잦고 언제든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해봤다.

아니, 일본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기댈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최고의 방공호도, 안전장치도, 피난소도 아닌,

역시 ‘사랑’이라고,

죽음보다 강한 그것이라고,

별수 없이 신파적인 이 소설이 내게 가르쳐줬다.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인 걸 알았더라면.”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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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고,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는 거야. 극적이라 할 만큼 거리를 좁혀가는 방식이 대단히 멋지거든. 무엇보다 무수히 많은 사람중에서 나를 선택해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214)
도모코, 마음이 병든 건 착실히 살아왔다는 증거란다. 설렁설렁 살아가는 놈은 절대로 마음을 다치지 않거든. 넌 한 사람을 진심을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에 병이 든 거야. 마음의 병을 앓는다는 건,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증표나 다름없으니까 난 네가 병을 자랑스레 여겼으면 싶다. (80)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해. 사람을 꺼리면 안 된다. 삶에서 해답을 가르쳐주는 건 언제나 삶이거든. 컴퓨터나 로봇이 아니라, 모든 걸 가르쳐주는 건 사람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서 사람을 만나봐라.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161)
다들 사랑하는 사람이 계속 살아주기를 바랐거든. 난 그게 참 아름답더라.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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