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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향기
  • 독자  2008-02-28 18:33  좋아요  l (0)  l  l 수정  l 삭제
  • 동아일보 _ 이 아침의 시

    소를 웃긴 꽃 - 윤희상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 시집 '소를 웃긴 꽃'(문학동네) 중에서

    꽃이 소를 들어 올리다니 동화 같은 상상력인가 싶은데 가만, 저것은 실제가 아닌가? 들판에 풀(꽃)이 있는 한 소는 결코 맨 땅을 밟을 수 없다. 납작 엎드리긴 했어도 풀이 온몸으로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먹이사슬에서 생산자인 풀은 1차 소비자인 소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뿔이 된다. 소가 풀을 밟고 선 저 단단한 네 굽도 실은 풀로 된 것이다. 풀이 없다면 저 큰 짐승도 맥없이 쿵 쓰러질 것이다. 소뿐이랴,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도 살아서 울거나 웃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풀잎에 매달린 한 마리 풀여치다. 저 철부지 웃는 소도 그걸 알긴 알 것이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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