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지독하게 첫 정을 줘 버렸구나. 원래 첫 정이 무서운 법이지.˝
˝첫 정이요?˝
˝그게 말이다. 처음으로 사랑을 너무 많이 쏟았다는 뜻이야.˝
아저씨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흔히 말하는 잔 정이 없는 편이다. 잔 정이 없다라고 하면 휴머니즘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까봐 어렸을 때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넉살 좋고 누구와도 잘 지내는 친화력이 높아야 좋은 성격이라 하여, 그렇지 못한 나는 열등감이 많았고 성격을 바꿔볼까 노력을 해 본 적이 있는데 부족한 ‘잔 정‘ 또한 채워야 할 것이었던게다.
어쨌든 사람에게도 이러니, 동물에게 뭐 별달랐을리 있겠는가. 그다지 애정이 샘 솟지 않는다.
한솔이가 왕자에게 쏟는 유난한 사랑도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공감이 잘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아저씨와 한솔이의 위 대화를 읽으며 무의식 속 자아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하하하.
학창시절, 무언가에 몰두하게 되면 빈틈 없이, 그 모든 것을 알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하나에 빠지면 온통 그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다른 것에 흥미도 없을 뿐더러 쏟을 에너지가 없었다.
그게, 참 힘들었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관심 있게 찬찬히 들여다 보지 않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나름 방어 전략이었던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한.
지독한 첫 정. 순수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의 난 순수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나,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진 않을 것이다. 변해가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