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서서히 무너지는 잇몸에서 어느 순간 마침내 모든 이가 남김없이 한꺼번에 빠지는 것처럼 붕괴된다. (<은둔하는 북의 사람> 중에서.)
그 붕괴를 그려내는 것. 바투 뒤쫓아오는 실패를 겨우 예감만 할 뿐이거나, 이미 실패해 있는 삶에 질식하거나, 더러는 소멸에 매혹되거나, 떨어져내리기 시작하는 현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그려내는 것. 마치 머스탱을 몰고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는 도로 위를 내달리며 자멸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한 인물들을 관찰하는 시선. 그 시선이, 우리 손에 주어진 기회의 하찮음, 피로, 권태, 나약함, 불평등, 외면하고 싶은 삶의 온갖 한계상황을 부각한다. 붕괴를 예견한다.
작가는 결정적인 무너짐 이후의 삶을 그리지 않지만, 우리는 이야기의 뒤를 살아가야 한다. 그 파괴에서 남은 부분이 있거나 말거나, 설령 어떤 희망이나, 심지어 그러고자 하는 의지조차 전무할지라도 삶은 재건되어야만 한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영광의 기억들, 오물로 얼룩진 도덕과 이상, 치유될 수 없는 배신감 따위를 바닥에 깔고서, 계속할 명분도 설계도 없이 쌓아 올리는 ‘삶’이 제 이름값을 할 리가 만무한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남은 것이 이 뿐이며, 되돌아갈 길은 언제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