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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읽기
  • 트렁크
  • 김언희
  • 10,800원 (10%600)
  • 2020-11-22
  • : 1,630
시집의 복간본이 출간된다는 의미를 이 시집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수십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잊힐 리가 없는, 이렇게나 펄펄펄 살아있어 영영 마를 리 없는 시의 생명력을 지금 이 시절에 다시금 길어올려 목을 축이는 일이라는 것.

팔을 착 감아오며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한 편 한 편의 시를 오싹하고 달콤하게 느끼며,
나도 아직, 두부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미꾸라지처럼 살아있다는 감각을... 감각의 재부팅을 경험한다.

<미꾸라지숙회>

희망, 희망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미꾸라지숙회라는 음식을 잡숴보셨는지요
산청 생초 명물이지요
기름 둘러 달군
백철 솥 속에
펄펄 뛰는 미꾸라지들을 집어넣고
솥뚜껑을 들썩이며 몸부림치고 있는 미꾸라지들 한가운데에
생두부 서너 모를 넣어주지요
그래 놓으면
서늘한 두부살 속으로
필사적으로 파고들어간 미꾸라지들이
두부 속에 촘촘히 박힌 채
익어 나오죠
그걸 본때 있게 썰어
양념장에 찍어 먹는 음식인데요
말씀하시는 게, 그
두부모 아닌가요
우리 모두 대가리부터 파고들어가
먹기 좋게 익혀져 나오는
허연 두부살?

- 문학동네 포에지 001 <트렁크> p.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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