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 그는 벼락치기 하듯 여러 가지 새로운 주제를 늘어놓았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어디인지, 가장 즐기는 스포츠는 무엇인지, 가장 자주 먹는 디저트는 어느 것인지.
우리는 마티니와 맨해튼을 한 잔씩 앞에 두고 계속 우리만의 이상한 인터뷰를 이어갔다.
"지어내는 걸 좋아해."
"그게 왜 좋은데요?"
어린애처럼 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영원에게 나는 또 진지하게 답해주고 싶었다.
"혼자 지어낸 거라도, 이야기는 위로가 돼."
"그럼 잘하겠네요." p.148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만 유난히 인색하다. 사회가 정의한 정형화된 삶을 따르지 못한 이는 더욱 그렇다. 날 선 사회의 시선과 타인과 끝없는 비교에 지쳐 내린 방어기제이다. 텅 비어버린 듯 허망하고, 무어 하나 이루지 못한 자기 모습에 자조하는 이들.
이런 이들은 지난 기억의 상처조차 상처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흘려보낼 뿐이다. 이들이 공통으로 겪는 이 ‘얼얼한’ 통증은 누구 하나 명확한 치료법을 일러주지 않는다. 누군가 손을 뻗어도 그 손이 실재하는 것인지 의심하고, 그런 의심의 과정에서 자괴감을 느끼는 부정의 굴레 속을 벗어날 수 없다.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는 그런 이들에게 ‘해인’과 ‘영원’이라는 인물의 대사를 빌어 끝없이 질문하는 책이다. 처음엔 아주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한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내 마음을 침식시키는 그 아주 작은 씨앗이 무엇이었는지. 이러한 과정에서 독자들은 경계심을 거두고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마음을 점차 드러내게 된다. 혈액이 혈관 밖으로 나와 공기와 접촉하고, 응고되어 상처를 보호하는 딱지가 되는 것처럼. 같은 감정을 느낀 우리의 마음이 공명하는 것이다.
“끊어져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런 대화가 잘 없어도 좋아할 수 있어요.”
그래도 그때만큼 낙담하지 않았다. 그저 어째서 그가 그렇게나 지어낸 사람 같았는지 아주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