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生, 무슨 다른 할 말이 지금 제게 더 남아있겠습니까
이제 연탄을 쓰는 집은 그렇지 않은 집보다 훨씬 적지요
연탄불 한 번 갈아본 적 없는, 아니 연탄이 어따 쓰는 건지
책에서나마 그림으로 알은 아이들이 이제는 대다수이지요
지독스런 가난이 지겹도록 우리 식구 곁을 떠나지 않던 시절,
퇴근길에 그날 하루를 버틸 연탄 몇 장 사들고 오시던 아버지와
매캐한 연탄내에 매워진 두 눈을 연신 비벼대시던 어머니와
다 타고남은 연탄재를 차대며 놀던 아이들 이제는 없지요
先生, 무슨 다른 할 말이 지금 제게 더 남아있겠습니까
그 시절, 부끄럽고도 그리운 기억, 저 역시 연탄재 차기 놀이를 즐기던 한 아이였음을
매캐한 연탄내 탓인지 항시 두 눈이 젖어있지 않은 적이 없으시던 어머니의 손수건이었음을
연탄 몇 장, 붕어빵 몇 개 들고 지친 몸 절 향해 환히 웃으시던 아버지의 희망이었음을
지독스런 추위가 지겹도록 우리 여섯 식구를 괴롭히던 시절,
연탄은 제 몸을 불살라 그 뜨거움으로 우리를 덥게 했다는 걸
혹한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볕을 온몸으로 양껏 쬘 수 있게 해줬다는 걸
이제 연탄 보일러에서 기름 보일러로, 기름 보일러에서 도시가스 보일러로
더 이상은 지독스런 추위를, 가난을 지겹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을 안락한 집에서
한겨울에도 반소매를 입고 뜨거운 물로 거품목욕을 하는 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지요
先生, 당신이 준엄하게 꾸짖는 그 물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는 그 물음 앞에서
···
"안도현 詩人은 힘이 세다, 그것은 부드러운 강함, 진작부터 나는 알고 있다
안도현 詩人은 아직 젊다, 그는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詩人이다
안도현 詩人은 아직 계속 詩를 쓴다, 따라서 그를 향한 냉소는 아직 이르다"
2002. 10. 3.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책읽기와 삶읽기(10):
『외롭고 높고 쓸쓸한』(안도현 著)]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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