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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서재
  • 기울어진 문해력
  • 조병영
  • 17,820원 (10%990)
  • 2025-01-17
  • : 4,125


문해력이란 무엇일까? 단지 읽고 쓰는 힘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힘'이어야 한다. 기계가 읽고 쓰는 시대에 사람이 직접 읽고 쓰는 것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텍스트는 삶이고, 삶은 텍스트다" _282쪽

문자가 발명되고 인쇄술의 발달로 누구나 읽고 쓰는 일이 가능해졌다. 읽고 쓰는 일은 단순히 문자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일을 넘어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AI의 발달로 기계가 사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읽고 쓰게 되었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월등히 앞선다. 사람이 쫓아갈 수 없을 정도다. 효율성은 뛰어나나 인간 답지 못하다. 삶이 배제되어 있다. 그냥 텍스트일 뿐이다.

문해력은 소통하는 도구다. 소통은 쌍방향이다. 균형 잡힌 대화다. 점점 소통이 단절되고 연결의 시대이나 고립되어 간다. 이유가 무엇일까? 무늬는 소통이라고 하지만 삶을 공감하고 경청하는 태도가 누락된 일방적인 문해력 때문이다. 정치도 양극단에서 대립하고 있다. 겉으로는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정치를 운운하지만 문해력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문해력은 삶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감정과 기분을 읽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맥락으로 말을 했는지를 살피며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문해력이 높아질수록 사람다워진다. 현명한 생각과 행동, 지혜로운 판단을 가지게 된다. 텍스트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천천히 읽고 깊이 읽게 되면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된다. 그게 공감이다. 단순히 문해력 점수가 높다고 해서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 수능 점수가 높다고 해서 인간성이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듯이 말이다. 문해력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이해하려는 마음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현재 우리의 문해력은 기울어져 있다.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한다.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뱉는다. 상대방은 안중에도 없다. 문해력이 기울어진 상태다.

"비판적 문해력이란 개인이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는 문해력이다" _71쪽

AI가 인생의 무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잘만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자칫 시스템에 노예로 전락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직접 텍스트를 생산하고 읽어내야 한다. 남을 향한 비난은 나쁘지만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은 약이 될 것이다. 읽고 쓰면서 비판적 사유의 힘을 길러내는 일이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는 비결이다.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AI 시대 문해력도 달라져야 한다. 많이 읽는 것보다 어떻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과 성찰이 동반된 읽기, 천천히 생각하고 몰입하는 읽기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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