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보기와 다르게 인권 의식이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빨랐다. 그 일례로 동학 운동 당시 주창했던 핵심 사상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인내천 사상의 근간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신분제 사회를 유지해 오던 분위기에서 평등사상을 외쳤다는 것은 개혁 그 자체였다. 그뿐만 아니라 천도교 신자였던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폈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영국만 보더라도 굴뚝 청소를 어린이들이 할 정도로 어린이의 인권은 전혀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누구보다도 앞선 인권 의식을 가졌던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사회 양극화와 혐오 사상이 대두되면서 인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인권은 누구나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인권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리 많이 강조하더라도 과하지 않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 권리를 계속해서 강조해야 하는 이유도 자칫 잊기 쉬운 권리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례로 비추어 보더라도 집단 학살과 인종 차별이 일어난 것이 우연의 일치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내재되어 왔던 차별 인식 때문이었다. 인권을 수시로 상기시켜며 실제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
인권 감수성이 중요한 시대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불이익을 줄 수 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를 뿐 차별의 대상이 아니다. 각자 특징을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한다면 대립이나 차별을 줄일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다양한 인종, 난민 문제도 인권 개념과 동일 시 한다면 극단의 갈등을 줄여갈 수 있다. 서로가 존중한다는 마음과 태도로 상대를 대한다면 불필요한 대립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실제 경험해 보아야 한다. 선입견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만남과 대화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인권을 망각할 수 있다. 기득권의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힘을 가진 경우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평소 인권 감수성이 예만 해야 한다. 때로는 예민할수록 지나칠수록 좋을 수 있다.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도 존중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