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자리가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 됨됨이가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도 자리에 앉아 있으면 어느 순간 그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갔다. 정보 유통이 더딘 시대에야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은 어떤가. 검색 몇 번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이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은 통용될 수 없다.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시대를 맞이했다.
며칠 뒤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선출된다. 대통령 자리에 대한 권위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시대도 오래전 예기다. 대통령 자리가 대통령을 만들었던 것은 옛이야기다. 이제는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권위가 만들어지는 시대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대통령 자리를 빛나게 할 것이다.
정치적 탄핵으로 모함을 받고 유배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조선의 7명을 다룬 책 『유배도 예술은 막을 수 없어』는 사람이 자리를 만들어낸 사례다. 외로움을 견뎌내야 하고 언제 유배가 풀릴지 모르는 막막한 세월 속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척박한 유배지의 자리를 학문을 꽃피우는 자리로 만들어낸 이들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자리를 빛나게 했다.
유배지에서 부와 권력을 는 대신 책을 읽고 학문에 전념한 결과 훗날 위대한 사람으로 칭함을 받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유배지는 인생의 내리막길이자 기대할 것도 없는 자리였겠지만 그들에게 유배지는 또 하나의 기회이자 인생 역적의 장소가 되었다. 유배지가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유배지를 특별한 장소로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이제 선택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어떤 자리에 가기를 열망할 것이 아니라 내게 맡겨진 자리가 빛나도록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다. 자리는 영원하지 않지만 자리를 빛나게 한 그 사람의 이름은 영원할 수 있다. 정약용, 허균, 윤선도, 김만중, 이광사, 김정희, 조희룡처럼 말이다. 자리만 탐할 것이 아니라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먼저다. 자리에 앉으면 저절로 자릿값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