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꽃이 만개한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모두가 설렘 가득하다. 봄은 생명을 움트게 하는 계절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생명이 있으면 저절로 죽음도 뒤따른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면 슬픔이 크지 않겠지만 인위적이거나 사고로 인한 죽음, 폭력에 의한 희생은 누구나 가슴이 아플 수 없다. 『모두가 잘 지내겠지?』라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인사말처럼 보이지만 그리움에 사무친 감정이 읽힌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라고 한다. 매년 기일이 되면 추모하며 고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기억은 아픔을 동반하지만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죽음을 소재로 한 동화가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생각해 본다. 아직 어리다고 해서 슬픔마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 간의 유대감을 갖기 위해서는 말 못할 아픔도 이제는 과감히 나누어야 할 때다. 아이들도 부모의 표정을 통해 생각을 읽는다. 기억 조차 하기 싫은 죽음이라도 함께 애도하며 나눌 때 남아 있는 가족들도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기독교에서도 봄이면 어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게 생각하며 고난이 주는 특별한 의미를 되새긴다. 고난은 피하고 싶은 영역이긴 하지만 고난 없이는 기독교를 온전히 말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안전 미비로 인해 생기는 사고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분명히 막을 수 있는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니겠지라는 안일함이 사고를 더 키우고 있다.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지키기 위한 우리 사회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른들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