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
무의식적으로 했던 대로 행동하고 보던 대로 보는 습관이 관성의 작용처럼 우리에게 늘 작용한다. 다르게 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을 이겨내려고 하는 힘을 의지적으로 발휘해야 하는 힘겨운 일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타인의 조언조차도 귓등으로 듣곤 한다. 분명 나를 위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해 준 이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터인데 대충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낸다. 내 생각, 내 행동대로 하는 것이 편하고 좋다. 곁에 따끔한 충고를 해 주는 사람도 없어진다. 그때가 바로 위기다. 새로운 시각, 새로운 시선, 새로운 관점을 얻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책이든 사람이든 어디에서든 자신의 옛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해야 한다.
그러던 중에 파리 신부를 만났다. 어린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곤충들을 소재로 가져왔다. 등장인물이 사람이 아닌 곤충일 때 호기심이 더 생긴다. 김태호 작가는 친숙한 곤충 중에서 약간 사람들이 꺼려할 수 있는 이들을 선택했다. 다르게 보려는 작가의 창작 의도인 것 같다. 파리, 거미는 겉보기에는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외모가 한몫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자연 세계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대상은 하나도 없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사람만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뿐이지.
작가의 관점은 '지금까지와는 좀 더 다르게 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신 것 같다. 어린 독자를 포함해 우리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능력이다. 다르게 보는 능력말이다. 고정된 관념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순간 답정녀가 되고 만다.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자신에게 모두 맞추라는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고질병이 우리를 유혹한다.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는 곤충이라고 하더라도 쓸모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쓸모 말이다.
위험한 순간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마음 먹은 것을 행동에 옮기는 파리 신부의 모습이 무모하게 보이지만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약하지만 끝까지 주변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서로 돕는 존재다. 지금은 각자도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좀 더 다르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