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을 고르는 기준은 ‘출·퇴근 길에 읽기 적합한가?’이다. 너무 두꺼워도 안 되고, 글씨가 너무 작아도 안 된다. 지루한 내용이라 잠이 올 법한 책은 사절이다. 고르고 골라 이번 주엔 <초승달 엔딩 클럽>을 읽었다. 보통 의리로 꾸역꾸역 읽는 작가의 말까지 재밌게 읽었다. 퇴근할 때 읽을 거리를 남겨 놓느라 신경을 써야 할 정도였다. 그 시기를 지난 사람들은 마냥 부러워하지만 당사자들에겐 죽음보다 깊은 막연함과 불안함이 깃든 10대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민폐만 끼치거나 모든 분야에서 천재인 주인공이 아니라서 좋았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친구들이 우리가 되고, 죽음을 모험으로 바꾸는 과정을 적당한 무게로 표현했다. 생물실 문에 새로 단 자물쇠에 꼭 맞는 열쇠처럼.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도 구질구질한 감정 호소문과 부모님 뒷담화밖에 써지지 않아 그냥 관뒀다. 유서 따위 남기지 않는 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좋을지도 모른다.- P51
우리가 엔딩을 얕봤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죽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P83
환희가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병문안을 갔다. 퇴원한 후에는 이전과 다름없이 넷이서 몰려다녔다. 함께 매점과 도서관을 가고 운동장을 회전 초밥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면서도 막상 서로의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는 선뜻 꺼내지 못했다. 표정과 분위기만으로 알음알음 추측할 뿐이었다.- P109
괴물에 쫓길 때에는 살고 싶은 의지가 퐁퐁 샘솟았는데, 현실로 돌아오자 차라리 쫓기던 순간이 그리워졌다.- P112
직면의 순간은 언제나 어렵다. 참담한 기분을 뒤로하고서 마른 입술로 혀를 축였다. 연준은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뗐다.- P116
나는 화문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도망친 세상에 갇혀 버린 기분을. 족쇄 같은 모든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작은 아이를 이제는 편하게 해 주고 싶다고.-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