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유명한 책이라 안 읽어도 외울 정도로 본 듯한 책. <새의 선물>도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수백 번도 더 들여다 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접한 적이 없어서 더욱 새롭게 읽었다. 제목만 보면 내용을 선뜻 추측할 수 없는 까닭에 첫 장부터 탐색하듯 살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처럼 동네 전체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떠오른다. 앗, 예시로 든 드라마도 제대로 본 적은 없는 것들이다.
작품을 통으로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에 발췌는 많이 하지 않았다.
개정판에서는 문제될 수 있는 표현이 다듬어졌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나는 사랑이란 것은 기질과 필요가 계기를 만나서 생견났다가 암시 혹은 자기최면에 의해 변형되고, 그리고 결국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P11
나는 거짓과 위선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P56
아줌마들은 자기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짓는다. 자갈투성이 밭에 들어와서도 발길을 돌려 나갈 줄을 모른다, 바로 옆에 기름진 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번 발을 들여놨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뼈빠지게 그 밭만을 개간한다.- P75
아무런 이지적 노력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그따위 신체적 성장을 남의 눈앞에 앞당겨서 보이려 한다거나 다만 금기라는 사실 때문에 본뜰 가치도 없는 어른 흉내에 매료된다거나 하는 것은 역시 봉희 같은 어린애들만의 생각이다.- P86
머리가 너무 좋으면 머리를 돌리다가 머리가 돌아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로 머리가 돌기는 틀린 아이들 간에는 공공의 의학 상식이었다.- P176
어쩌면 이모의 내면에는 수많은 다른 모습들이 함께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들 중에 하나씩을 골라서 꺼내 쓰는 제어장치, 즉 이모의 인생을 편집하는 장치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면 이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 우리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P357
위급한 순간에는 그토록 자랑하는 남자다움을 포기하는 것이 아저씨가 가진 호방함의 이면이었다.- P364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P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