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리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병이냐고. 도망치는 병이라고 그러대. 그땐 최 선생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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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세탁부의 다음 말은 통렬하게 가슴을 찔렀다.
"세상에서 도망치는 병이야. 자기한테서도 도망치는 병이고. 그
렇지?"- P291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를 얻어 세상에 돌아가면 희망 대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세상 속에서 이룰 것이 없다는 진실.- P292
그 순간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아아, 저 미친 새끼.- P310
승민은 산책을 하러 나온 게 아니었다. 귀환이 보장된 길도 아니었다. 귀환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은 마지막 비행에 나선 길이었다.- P319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어. 살다보면, 가끔."- P321
나는 진실에 얻어맞아 고꾸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진실은 내가 겁냈던 것만큼 거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P325
"이수명 씨는 류승민 씨의 죽음을 인정하나요?"
나는 잠자코 있었다. 승민은 내게 죽음이나 삶으로 분류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승민 자체로 존재했다.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 기억이나 실체 같은 개념이 가닿지 않는 어떤 차원이기도 했다. 나는 거기에 맞는 이름을 찾아내지 못했다.- P331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P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