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인기있는 TV드라마를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여성들의 경우는 천일의 약속을,남성들은 뿌리깊은 나무를 들지 않을까 싶다.
뿌리깊은 나무는 이정명의 동명 원작 소설인 뿌리 깊은 나무를 각색한 것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려는 세종과 신권위주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던 삼봉 정도전의 유지를 받드는 밀본이란 비밀 조직을 내세우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이끌면서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데 특히 밀본의 수장 정기준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위해 가리온이란 백정으로 분한 사실은 마치 영화 유쥬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를 보는듯한 대 반전을 그리고 있다.
밀본의 3대 수장인 정기준은 조정에 숨어있는 관료인 밀본지사들에게 정체를 밝히면서 삼봉 정도전의 밝힌 밀본의 뜻을 알리는데 '군주가 꽃이라면 그 뿌리는 재상이다. 꽃이 부실하다 하여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지만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가 죽는다. 부실한 꽃은 꺽으면 그만이다'라 왕권보다는 사대부 위주의 신권이 우선인 나라가 조선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집현전의 의견이 재상 위에 있고 또 그 위에는 임금 이도가 있다"며 "그 집현전 철폐를 시작으로 재상중심 정치를 실현할 것이다"라고 밀본의 첫번째 공식적인 목표를 밝히면서 세종 이도가 집현전을 위시로 경연을 농단하며 왕권유지의 도구로 삼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세종 이도가 경연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비판하는데 그가 비판한 경연이라 과연 무엇일까?
경연은 왕에게 유학의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덕에 의한 교화를 이상으로 하는 정치원리를 근거로 왕에게 경사를 가르쳐 유교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실제로는 전제왕권의 사적인 행사를 규제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하니 상당히 중요한 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
경연 제도는 원래 중국에서 나온 제도이지만 명,청을 거치면서 사라졌는데 반해 조선의 경우는 조선말까지 경연제도가 유지되었다.그럼 조선을 건국한 유학자들이 경연 제도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도전은 임금이 소인들을 만나면 여자와 놀이에 관심을 갖고 정무를 안보게 되지만 책을 읽고 사대부를 만나면 국정에 대해 생각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 말한대서도 알 수 있듯이 임금을 소인과 멀리시키고 최대한 사대부와 만나 공부케 함으로써 공정할 결정을 내리도록 하기위한 것이 경연의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연에 관련한 책중의 하나가 본서인 경연,왕의 공부란 저서인데, 여기서는 경연이 즉 왕의 공부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경연,왕의 공부의 표지>
근래 각 기업의 CEO등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여러 방면의 공부를 틈틈히 히고 있다는 기사를 보곤 했는데,이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흔히 절대 왕정으로 알고 있던 조선 시대에도 왕들이 신하들을 스승으로 삼고 공부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어보면 흔히 편하게 앉아서 신하들에게 이거 저거 지사나 내리는 것이 조선 시대의 왕이란 생각이 얼마나 커다란 편견인지 깨닫게 해주는데 이 책에서 조선 시대 왕들은 하루 최대 다섯 번씩 즉 해가 뜰 무렵 아침식사도 하기 전에 조강으로 일과를 시작해 정오에 주강, 오후 2시에 석강에 참석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특강 형식의 소대및 밤에 열리는 소대인 야대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국가 정책을 토론했다고 한다.조선 시대 왕들은 현재 고 3처럼 왕이 된 이후 죽을때까지 경연을 통해 공부를 했다고 하니 왕이란 자리가 참으로 쉽지만은 아닌 자리임을 알게 해준다.
본서는 1장 경연과 왕의 하루에서 경연의 종류와 어떤 식으로 운용되었는지를 독자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해 주면서 2장 경연에 관한 모든 것에 말 그대로 경연의 모든것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왕의 학습 방법인 경연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단순히 경연이 왕의 학습이 아니라 왕의 스승으로서 왕을 견제하는 신권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그래선지 이 책에선 경연광이었던 성종을 이상적으로 평가하고 경연을 싫어한 세조나 연산군을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조선 시대는 절대 임금이 혼자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나라가 아님을 알수 있는데 실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공신인 삼봉 정도전은 조선의 기본 법전이 되는 <조선경국전>에서 '치전총재소장야' 즉, '나라는 재상이 다스리는 것이다'로 신권을 주장하며 왕권이 아닌 신권 중심의 재상의 나라를 이상향으로 태조 이성계와 세자 방석에게 교육을 주지시키려다 결국 태종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정도전의 사상은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대부의 의식속에 면면히 자릴 잡게 되는데 사대부인 선비들은 왕밑의 신하로서 주종관계를 이루고 있지만,경연이란 제도를 통해서 왕이 스승으로 왕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당시 주변국과 다른 이원적인 정치체계를 가졌음을 알게 해준다.
왕은 주종관계로서 사대부들을 신하를 부리려고 하지만 사대부들은 스승으로써 왕을 견제하려고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중의 하나가 바로 조선 후기의 대 성리학자인 송시열을 들수 있다.송시열은 효종과 현종의 스승이기도 했는데 예송 논쟁을 일으키면서 당시 남인인 허목이 왕가의 예는 일반 사대부와 같을수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송시열은 예를 논함에 있어서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맞받아 친대서 알 수 있듯이 송시열은 왕 역시 사대부의 일원이란 생각을 가진듯 하다.
경연,왕의 공부는 인문학 서적답게 빽빽한 글씨가 한가득이라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지만, 본문에 앞서 총천연색 경연자료(사진과 그림)가 들어있고 풍부하고 다양한 경연의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인문학 서적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있다.
<인문학 서적으로 드물게 다양한 커러 화보가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경연 사례가 몇몇 왕에 그치질 않고 다수의 조선 임금을 다루면서 상당시 충실한 편인데 특히 책속에 인용된 각종 기록들의 번역과 해석 및 주석은 이 책의 장점으로 이 책을 읽으면 조선시대 임금 및 정치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 시대 경연이란 제도가 현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프롤로그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저자는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몸은 빌릴 수 없다고 말한 대통령의 재임 당시 중국 장쩌민 주석이 방한해 청와대 뒷산의 붉은 단풍을 보며 한시를 읊는데,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적절한 말로 응수하지 못하고 딴소리를 하는 뉴스 장면과 검사와 다투었던 어떤 대통령은 품위 없는 말투,현직 대통령은 외국 정상 앞에서 모욕을 당하는 모습등을 비꼬우면서 절대 권력을 휘들렀던 조선 시대 왕들보다 못한 현재 지도자들의 태도(인문학에 대한 소홀한 모습)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조선 시대의 왕들이 전제적이고 독재적인 지도자라고 쉽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당시 조선의 지도층이었던 사대부들은 공부를 통해서만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고, 이런 이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왕세자 시절부터 신하들이 고전을 가르쳤고 왕이 되서도 지속적으로 경연을 통해 왕을 성찰시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연은 고전을 공부함으로써 오늘의 밝은 길을 찾으려던 조선 왕들과 사대부들의 노력이었던 것이다.물론 경연이란 옛 제도를 현대에 되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 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과연 조선 시대 왕들처럼 백성들을 위해 매일 5회이상의 학습을 하는지 궁금해 진다.
개인적으로 경연-왕의 공부는 대한 민국을 이끈다고 자부하는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필히 한번씩 읽고 스스로를 반성해 보면 좋게단 생각이 드는 책이다.
by cas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