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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정원
  • 감은빛  2025-12-02 16:36  좋아요  l (0)
  • 어릴때부터 삼촌이라 불렀던 친척 어른들이 사실은 오촌 당숙님들이셨고, 사촌동생들이라 여겼던 아이들이 사실 육촌동생들이었다는 것을 사춘기 무렵에 알게 되었어요. 그때쯤 생각이 들었죠. 어릴때부터 명절때마다 내가 다 돌보아야 했던 10명이 넘는 동생들 중 실제 사촌동생 은 절반 정도고, 나머지 절반은 육촌이었구나.

    그러고보니 명절 아침에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큰집으로 가서 또 제사를 지내고, 그 다음에 삼촌집으로 가서 다시 제사를 지낸 후에야 밥을 먹고 놀았는데, 왜 세 번씩이나 장소를 옮기며 제사를 지내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어른들이 하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였죠.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동생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그 자식들을 같이 키웠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도 아버지가 아직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니 우리 할머니 혼자 아들 셋, 딸 둘을 키우면서 조카들 넷을(아마도) 함께 키웠던 것 같아요. 다들 함께 자라서 친형제처럼 지냈을 거라 추측이 되고, 그 자식들인 우리도 삼촌이라 부르고, 사촌이라 부르며 자랐던 것이죠.

    불과 두 세대 전의 일인데 그 할아버지들은 왜 그리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는지, 할머니는 그 많은 아이들을 어찌 혼자 키우셨는지 전혀 아는 것이 없네요.

    사실 제가 군대가기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되지도 않는 유산 때문에 형제들 간에 다툼이 있었고, 제대한 후부터는 명절에도 큰집을 안 가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왕래가 끊겨서 어릴때 늘 제가 돌봐주었던 10명이 넘던 동생들을 못 보고 긴 시간이 지났네요. 지금은 길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볼거예요. 어린시절 얼굴도 이젠 가물가물해서.
  • 카스피  2025-12-03 12:32  좋아요  l (0)
  • 아마 60년대 즈음 지방의 경우에는 지금과 달리 친인척간의 왕래가 아주 잦았다고 합니다.대부분 사는 곳이 근처 였기에 더욱 그랬다고 하네요.하지만 그러다보니 감은빛님 할머님처럼 친척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키우던 어르신들이 많으셨답니다.
    하지만 70년대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찾아 서울로 지방 대도시로 이동하면서 과거와 달리 친 인척간의 왕래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특히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더더욱 친인척 얼굴 보기가 힘들어 졌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어릴적에는 이종 사촌들고 자주 만났지만 나이가 들면서 왕래가 뜸해져서 이젠 길거리를 지나쳐도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것 같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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