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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8년 후 : 뼈의 사원」은 3부작 중 1부이며 전작 '28일 후'를 제작, 감독했던 스탭이 다시 뭉쳤다고 한다. 전작은 안 봤고, 「28년 후」만 봤음을 미리 밝힌다.


갑자기 좀비물 푸쉬가 씨게 와서 이 장르 명작이라는 '28일 후' 시리즈의 최신작 「28년 후」를 봤는데 '좀비물'인 걸 빼면 정보 없이 봐서 감독이 대니 보일인 줄 몰랐다. 러닝타임 내내 종종 의심하다 엔딩인 듯 쿠키인 듯 엔딩 장면에서 초기작 '록 스탁 앤 두 스모킹 배럴즈'의 MTV스타일이 확 터지는 걸 보고 대니 보일이 맞구나 했다.


엔딩 포함 줄거리


28년 전 감염자들을 피해 홀리 아일랜드(섬)으로 피신한 생존자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일군다. 간조가 되면 본토로 바닷길이 열리는데 이날 생존자들은 본토로 건너가서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구해온다. 

섬의 아이들은 14세가 되면 본토로 가서 첫 사냥을 하는데(성인식) 아들인 스파이크가 열두 살이 되자 제이미는 스파이크를 데리고 본토로 간다. 아빠의 엄호 끝에 스파이크는 첫 사냥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무사히 본토에 귀환하지만 성공 축하 파티가 열린 그 밤에 스파이크는 아빠의 불륜을 목격한다. 뒤이어 본토에 의사가 있다는 정보를 아빠가 숨겼다는 사실을 알자 아빠에게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다. 

아빠가 아픈 엄마를 버렸다고 판단한 스파이크는 엄마를 데리고 본토로 가서 천신만고 끝에 닥터 켈슨을 만나지만 두 사람이 확인한 건 엄마가 암 말기이며 죽음이 임박했다는 진실이다. 그에 아일라는 안락사를 선택하고 스파이크는 닥터 켈슨의 도움으로 엄마의 제를 치른 후 엄마가 구조한 (감염자가 낳은) 아기를 데리고 홀리 아일랜드로 돌아온다. 아기에게 엄마 이름 '아일라'를 지어준 스파이크는 마을 입구에 아일라와 편지를 담은 바구니를 두고 다시 본토로 간다. 



1. 고립

'28년 후'에는 두 개의 공간이 등장한다. 본토에서 탈출한 생존자들이 정착해 터를 일군 안전한 홀리 아일랜드와 감염자들이 장악한 위험한 본토 브리튼이다. 간조기에 생존자의 땅과 죽은자의 땅이 연결되면 생존자들은 죽은자들의 땅으로 가서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구해온다. 

생존자들의 섬과 감염자들의 섬 중 고립된 섬은 어느 쪽일까.

  


2. 첫 사냥 혹은 첫 살인

아내 아일라의 반대에도 제이미는 열두 살이 된 스파이크를 데리고 본토로 간다. 홀리 아일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스파이크에게 본토는 감염자들이 장악한 공포의 땅이기도 하지만 첫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스파이크는 사냥=살인을 배운다. 감염자라고는 해도 일단은 인간의 형상을 한 생명체이므로 소년에게 첫 사냥은 생존과 더불어 첫 살인의 순간이기도 하다. 기억할 것은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미지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생존방식을 배운다는 사실이다.



3. 오이디푸스

서양문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얘기할 때 '오이디푸스 신화'를 빼놓을 수 없다. 첫 사냥에 성공하고 무사히 귀환한 날 밤 아빠의 불륜과 거짓말을 목격한 스파이크는 분노한다. 하지만 제이미는 스파이크가 느낀 절망을 외면하고 이는 스파이크가 아빠에게서 보호와 책임이라는 '가장의 지위'를 뺏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스파이크는 아픈 엄마를 데리고 안전한 아버지의 집을 떠나 본토로 향한다. 야만의 땅에 엄마를 고쳐줄 의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이미를 위해 변명해보자면 제이미가 스파이크를 사랑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신의 방식으로 아일라를 사랑한 것도 어쨌든 사실이고. 



4.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역설

메멘토 모리는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인간은 필멸하는 존재)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아픈 엄마를 치료하기 위해 아빠에게 첫 사냥(첫 살인)을 배운 야만의 땅으로 엄마를 데리고 간 스파이크는 그곳에서 엄마에게 예정된 죽음을 확인한다. 이때 닥터 켄슬이 절망하는 두 사람을 위로하며 뼈를 쌓아올린 제단 앞에서 하는 얘기가 '메멘토 모리'인데 「28년 후 : 뼈의 제단」의 주제가 드러난 장면이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간 땅에 엄마를 묻는 스파이크. 엄마가 구조한 아기에게 엄마의 이름을 지어주고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오는 스파이크. 아버지가 죽음을 가르친 땅에서 어머니가 새 생명을 구조해 스파이크에게 안긴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난 소년은 비로소 어른이 된다.


 

5. 성장과 독립

스파이크는 본토에 세 번 가는데 처음은 아빠랑, 두 번째는 엄마랑, 마지막은 혼자 간다.

앞선 두 번은 첫 사냥과 엄마의 치료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세 번째는 목적이 없다. 어린 스파이크는 왜 그 위험한 감염자들의 땅으로 갔을까. 해석을 위한 해석을 해보자면,


1) 제이미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스파이크(오이디푸스)는 아버지의 땅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없다.

2) 본토에서 아기의 탄생과 엄마의 죽음을 연이어 목격한 스파이크에게 홀리 아일랜드는 갇힌 세계 즉 멈춘 세계이고, 본토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열린 세계로 인식되었을 수 있다.

3) 이솝우화 '개와 늑대' 메타포로 본다면, 안전과 안정된 먹이가 보장되지만 묶여서 사육되는 삶 vs 굶주림과 생존의 위협이 있지만 자유로운 삶 중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건 아버지의 부정을 목격했고(낡은 세계의 붕괴), 엄마 아일라의 죽음과 아기 아일라의 탄생을 지켜본(삶과 죽음의 교차) 스파이크가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6. 후기

영국 본토에서 분노 바이러스가 퍼지고 28년이 지난 시점, 다른 대륙은 바이러스 진압에 성공했지만 영국은 실패했고 사실상 대륙봉쇄령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일견 브렉시트를 연상케하는 상황이다. 

장르는 B급 좀비물인데 그 안에 담긴 스토리텔링이 생각보다 신화적이고 철학적이어서 의외였고 기술적으로는 대니 보일의 MTV 스타일이 2026년에도 여전히 통하는 게 놀랍다.


1부 엔딩과 쿠키만으로는 2부와 3부의 스토리 방향이 잘 가늠이 안 되는데 큰 틀은 장르의 전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똥촉 하나 던지자면 1부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차용했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리적, 정신적으로 독립한 스파이크가 스스로 고향을 떠나 척박한 땅으로 걸어들어가는 2부는 '오디세이아 신화'의 변형이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알려진대로 '오디세이아'는 오랜 세월 타지를 떠돌며 고난을 극복하고 운명과 맞서 싸우는 오디세우스의 성장기다. 만약 2부가 오디세이아 신화라면 3부는 의외로 홀리 아일랜드로 귀환하는 얘기일 수도?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건 아기 아일라다. 감염자의 태반에서 태어난 아기는 일단 눈동자 감식법에 의하면 비감염자로 보이지만 아빠가 무려 알파 좀비인데 탄생 비화 정도로 소비될 것 같지는 않다.


- 등급심의 때문에 국내 개봉이 2월 말로 미뤄진 2부는 시리즈 중 가장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니 나같은 고어 기피자는 눈감고 봐야 할 듯.

- 스파이크를 연기한 아역 배우 알피 윌리엄스가 정말 연기를 잘 한다. 어떻고 저떻고 수식 필요 없이 걍 연기를 잘함. 연기천재만재임. 그런만큼 지속적인 심리 케어가 필요해 보인다. 알아서 하겠지만. 영화 초반부터 엔딩까지 내내 아동학대가 걱정될 정도인데 그만큼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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