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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동 둘리의 서재
  • 사피엔스 (무선본)
  • 유발 하라리
  • 19,800원 (10%1,100)
  • 2015-11-23
  • : 78,870

  벽돌책. 오래전에 사놓고도 그 깊이와 분량에 압도되어 읽지 못했던 책이다. 2022년 새해에 완독하게 되어 더 보람차다. 익히 듣던 바대로 유발 하라리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속도감 있게 글을 전개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수많은 예화와 예시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의 종횡무진하는 박학다식함에 놀랐다. 지은이의 거침없는 말빨 덕에 두꺼운 분량이지만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위 ‘빅히스토리’에 대한 책이다. 기존 역사학의 관심분야를 초월하여 인류나 우주 전체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이다. 지은이는 유인원에서부터 시작하여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차근차근 짚어간다. 그리고 역사학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을 던진다. 인지혁명, 산업혁명, 과학혁명의 결과 인간 개개인이 얼마나 행복해졌냐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전통적인 역사학은 이에 답하지 못한다. 생물학이나 심리학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 사학을 전공했고, 역사 분야의 책들을 주로 읽는데 부끄럽게도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와 관련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는 주장이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집단생활할 수 있는 개체 수가 늘었고, 더 많이 번식할 수 있게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각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행복한 변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영양상태는 더 취약해졌고, 노동강도는 더 세졌다. 집단의 성공이 꼭 개개인의 성공 또는 행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소소한 삶의 개선이 인생 전반의 행복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사피엔스 각 개인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농업혁명은 거대한 사기이며 덫이었다는 것이다. 신선한 충격이다. 지금까지는 ‘농업혁명 - 문명의 시작’ 정도로 도식화해서 생각해왔던 것이다.



  ‘개체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산업혁명과 현대 자본주의의 성취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 자본주의란 생산자는 미래를 신뢰하며 이윤을 생산에 재투자하여 끊임없이 생산할 것을 요구하고, 소비자는 누구든 빚을 내서라도 소비할 것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저소득층을 빚에 허덕이게 하여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무관심하고 무분별한 소비는 환경파괴나 가축 등 생명권에 대한 무시를 낳는다. 산업의 바퀴는 생산과 소비가 계속되어야 굴러가지만 그 바퀴를 굴리는 대다수의 사피엔스와 동식물들이 정말 행복한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역사를 각 개체의 행복 또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각 동식물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발전의 과정으로만 보던 관점에서의 대전환이다. 행복이 아니라면 사피엔스는 무엇을 위해서 이 고생을 해왔던가? 물론, 행복이 무엇이냐는 정의부터 어떻게 측정 비교할 수 있는지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쉽게 답할 수 없는 주제다. 그리고 모든 개체가 행복을 누렸던 역사는 없다는 점에서 기존의 역사를 가식과 허위의 것으로 단정할 위험도 있다. 반대로 모든 이가 행복한 헉슬리 식의 ‘멋진 신세계’가 과연 역사의 지향점인가 하는 의문도 남는다.



  호모 사피엔스는 영장류과(科)의 한 종일 뿐인데, 어떻게 지구 생태계를 정복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신과 비슷한 영역에 이른 걸까? 바로 인지혁명 덕분이다. 공통의 믿음을 설계하고 공유하게 되자 150명 이상의 대규모 집단도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 사피엔스의 진정한 능력은 언어를 통해 ‘가상의 실재’를 만들고 이를 통해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믿음, 종교, 사상 말이다. 함무라비 법전에 나타난 계급주의나 미국독립혁명의 ‘시민평등’ 등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인권이나 평등 같은 가치도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상상의 결과물이다. 상상력 덕분에 각 개개인은 여느 동물들보다 약하지만, 집단의 협력으로 효율성과 협응성을 높여 지구 생태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피엔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과학의 발전. ‘인간강화’와 ‘불멸에의 충동’에 대한 수많은 시도들. 지난 100년이 그전 100년과 달랐듯이, 앞으로의 100년은 어떤 모습이 될지 예상하기 힘들다. 인간의 결점을 인위적으로 보완한 사이보그가 ‘순수(?) 사피엔스’들을 대체하거나 사피엔스가 멸종될 수도 있고, 이후의 지배자는 우리가 교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개체일 수도 있다.



  다시 한번 되짚게 되는 불편한 진실은 역사는 인간의 행복과 영광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선택과 선택이 쌓인 결과일 뿐이다. 심지어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그들 자신의 힘만으로는 역사의 물길을 바꾸기 힘들다. 고도로 결합된 힘, 그리고 운명적인 우연이 교차될 때 역사는 바뀐다. 개별 유기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각자의 생각들이 모여 공통의 믿음과 협력을 이끌어내고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다. 애초에 사피엔스가 성공한 이유도 바로 그 점 덕분이었다.



  사피엔스의 미래가 불안하다면 우리는 다시 ‘상상’을 공유하며 새로운 미래를 그리면 된다.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보장, 환경친화적인 시도들, 동물권에 대한 관심 등 새롭게 대두되는 일련의 주장들에 그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사피엔스는 우리 앞에 닥친 이 위기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결국 그 답은 나와 너, 우리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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