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 어떤 사건을 사람들의 뇌리에 '딱' 꽂히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사람들의 재능이 탐난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팀이름을 정한다거나 슬로건을 공모할 때 빛을 발하는 사람들. 특히, 포털사이트 뉴스에 베스트 댓글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그 '드립'들을 보다 보면 상황을 간명하게 요약하거나, 번뜩이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그 능력들이 참 욕심난다. 카피라이터는 그런 능력에 특화된 사람들이다.
카피라이터 정철이 쓴 이 책은 형식부터가 파격이다. 지은이의 머릿속에서 영감과 과학을 불러내 토론도 시키고 계약서도 쓰게 한다. 광고주에게 제안하는 모습을 대화체로 복기하기도 하고, 제안서를 그대로 옮기기도 한다. 낯설고 자유롭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글이 되는 과정 생중계'라는 부제가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진짜 같다. 마치 글쓰기 1인 방송을 보는 느낌이다.
번뜩이는 카피들이 어디서 나올까 곰곰이 살펴보니 몇 가지 규칙은 있다. 같은 구조의 짧은 문장을 연속으로 배치하기도 하고, 서술어를 다양하게 붙여보기도 하고, 역발상으로 뒤집어보기도 하고,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탈격식의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그 방법이다. 특히, 추상적인 단어들을 실체가 있는, 실제 사람과 맞닿은 생활언어로 바꾸는 것. 이 점이 제일 중요하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 모든 과정이 쉽지 않고, 좋은 카피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커피를, 담배를, 시간을 소모했을까 싶어 짠하다.
< 문장력은 어휘력입니다. 풍부한 어휘를 지닌 사람이 풍성한 문장을 만듭니다. 그런데 어휘를 아주, 특별히, 대단히, 엄청나게 많이 손에 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책 좀 읽은 사람이라면 손에 쥔 어휘의 양은 다 거기서 기기입니다. 고만고만한 어휘를 얼마나 많이 동원해 이렇게 저렇게 문장을 조립해보느냐, 이게 핵심입니다. _ 41쪽 >
글 쓰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참 고단하지만, 지은이 말처럼 글을 잘 쓰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없다. 문장 하나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빠르고, 재밌고, 유쾌하게 읽었다. 이 책에서 배운 기술들을 갈고닦아 이참에 나도 '베댓' 한번 해보고 싶다!
생각은 찾는 것입니다. 꺼내는 것이 아니라 찾는 거입니다.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머리를 때리고 비틀고 꼬집어 어렵게 받아 내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협박도 하고 고문도 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머리를 못살게 굴어야 합니다. 그 난리를 쳐야 비로소 생각이라는 녀석이 배시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때 녀석 멱살 잡고 종이 위로 데려가면 글이 됩니다. - P15
문장력은 어휘력입니다. 풍부한 어휘를 지닌 사람이 풍성한 문장을 만듭니다. 그런데 어휘를 아주, 특별히, 대단히, 엄청나게 많이 손에 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책 좀 읽은 사람이라면 손에 쥔 어휘의 양은 다 거기서 기기입니다. 고만고만한 어휘를 얼마나 많이 동원해 이렇게 저렇게 문장을 조립해보느냐, 이게 핵심입니다.- P41
내 광고주가 될 수도 있는 그들은 내 책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책에 적힌 것 같은 새로운 발상을 받아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때, 이론과 실제가 같을 수 있나요,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위축도 안 되고 겸손도 안 됩니다.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 씩 웃어줘야 합니다. 자신감입니다. 일을 맡기는 사람에게 믿음과 기대를 주는 것이 일의 시작입니다. - P131
이렇게 일단 저지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든 말이 되게 만드십시오. 나는 이런 신나는 행위를 생각의 확장이라 부릅니다. 생각의 확장은 어려워서 어려운 게 아니라 자주 하지 않아서 어려운 것입니다.- P162
아이디어는 꼭 내가 내야 한다는 생각. 이 생각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내게 아이디어를 찔러줄 사람은 널렸습니다. 수용할 자세만 있다면 세상 모든 머리를 내 머리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착하게 잘 살아야 이렇게 아이디어 적선도 받습니다.- P273
어쩌면 카피라이터는 아무도 모르게 광고에 자신의 철학과 인생과 욕심을 녹여 넣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P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