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적인 베스트셀러의 인기에 힘입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일 테고
제목의 간결함이 나의 마음을 동화시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다빈치'와 기호학의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가늠하게 해주는 '코드' 라는 두 단어의 생소한 결합은 더욱 큰 의미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충분하였다. 어찌되었든지 간에 미스테리처럼 보이는 이 소설책 두권을 아무런 두려움이나 염려를 단 영점 일초도 하지 않은 채 덥썩 사버렸다. 그러나, 내용이 던져주는 충격과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구성의 단조로움은 나를 지루한 터널로 이끌었다.
1. 너무 눈에 뻔히 보인다.
이 소설의 결정적인 구성의 미약함은 너무나 많이 헐리웃 영화를 의식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작가 댄 브라운은 애당초 이 이야기를 헐리웃 영화로 만들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헐리웃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구성이 머릿속에 단단히 박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야기의 구성이 뻔하디 뻔한 헐리웃 영화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1) 로버트 랭던과 소피 소늬에르가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등장부터 예견된다..
-> 너무나 단조롭다. 모험을 헤쳐나가는 두 남녀가 결국 동지애에서 사랑으로 승화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인가?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젠 그런 사랑타령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2) 소피의 진실
이야기의 극적 전개가 소피와 관련되었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가족, 진실, 비밀, 성배 등이 한데로 맞물러져 있음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그녀의 진실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관찰자였던 그녀를 어느 일순간 중심 축으로 바뀌어 놓으면서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고, 스토리가 개인사로 집중되는 듯 보인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 마지막에 그녀가 잊고지내던 가족을 극적으로 만나는 장면은 우연 치고 지나치게 억지스러워 보인다. 마치 세 살짜리 아이가 내뱉듯이 "저도 그런걸 본적이 있어요" 하면서 알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잊혀진 가족상봉이 시급하다 할지언정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다.
3) 비밀은 가까운 곳에
그렇게 찾아 헤매던 그것은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행복을 찾아다니시나요? 그것은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라는 평범하지만 만고의 진리인 명제를 새삼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야기 전개상 그렇게 밖에 진행될 수 없음은 이해하지만 로버트 랭던처럼 소뇌에르의 탁월한 두뇌에 감탄되기보다는 먼가 맥빠지는 기운이 더 강하게 감돈다.
2. 일이 너무 잘 풀리다가 안 풀리다가
모든 게 다 우연하게 일이 짝짝 풀려나가다가 어느 일순간 막혀버리면 대책도 안 서게 꼬이다가 또 어떻게 되든 해결이 되는 둥 극적 긴장감이 넘쳐흐르기보다는 너무나 극적으로 일이 해결되기 때문에 거대한 우연들의 조각이 일말의 비현실성을 불러일으킨다. 어차피 헐리웃 소설이기에 일상성의 공감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전혀 신나고 흥분되는 모험도 아니다.
3. 전형적인 인물 구조
소뇌에르는 매우 지적이고 합리적이고 견실한 사람이다. 그에게서는 악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착하기 그지없다(물론, 한사람만이 제대로 된 심리상태를 가졌다). 복잡한 심리상태도 없으며 마음속에 어떠한 악도 없으며 사명감과 의무감으로만 똘똘 뭉쳐있다. 반면 대립구도로 등장한 '스승' 이라는 인물은 비밀에 쌓여있으면서도 나중에 누구인가가 밝혀지는 순간 허망해지면서(상반된 캐릭터의 오버랩은 영 매치가 되지 않으면서도 단순히 지적열망에 사로잡혀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졌다는 두 인물간의 연결 고리는 너무 단순화시켜버린다.) 너무나 철두철미한 그의 계획은 실소를 자아내기까지 한다. 따라서 절대적인 악은 없지만 절대적인 선은 존재하며, 그 대립구조가 마치 "지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호기심 강한 인간 vs 신의 고유한 본성을 지키고자 하는 성스러운 신" 으로 비쳐진다. 물론, 시온 수도회의 고유한 임무는 왜곡된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 막달레나를 되찾고 원래의 정신을 지켜나가자 하는 것이지만, 소피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그리스도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임이 밝혀지면서 '신성' 한 몸이 되고 지켜나가야만 하는 성스러운 비밀을 가지게 되며, 단순히 이에 대한 증거들을 찾으려는 레이 터빙의 광기는 그런 성스러움을 침범하는 악한 세력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4. 진실은 어디에
우리 주변에 이러한 진실들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코드들이 있어요. 텔레비전 광고, 책, 영화, 그림 등등 엄청나게 많지요. 그렇단다. 이 책을 다 덮고 나니 진실여부가 사뭇 궁금하다. 그래서 다빈치 그림 등을 살펴보면 정말 그러한 듯 보인다. 그렇다면 진실의 코드는 우리 주변을 쫘악 둘러싸고 있고, 공식적이지는 않지만(공식적으로 되는 순간, 지구상 가장 큰 카오스가 등장하려나? ) 비공식적으로 진실은 가까이에 있다. 그렇다면 이 책 역시도 랭던이 말했던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진실을 말했던 책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아무래도 그런 역사의 진실들을 파헤치는 책을 쓰면 몇 사람이나 '성배' 에 대해 관심을 가지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댄 브라운 씨는 자신의 소명을 다 했고, 그 소명이 보다보다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 블록벅스터 형식의 책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고 추론하다 보니 지루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그러한 구성방식들도 이해가 가긴 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목적은 '성배' 에 관한 진실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었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히트 치고 영화화까지 계획중인만큼 그 목적은 기대이상으로 달성한 듯 보인다. 그렇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리에 불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래도 빈약한 구성과 어설픈 스토리전개 때문인 듯 싶다. 자못 소설이란, 소재나 내용의 신선함도 중요하지만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는가에 따른 얼개이다. 이 얼개에 따라서 내용의 빈약함도 충분히(여기서 말하는 얼개란, 문장이나 구성 등을 아우름) 극복하여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고 삶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선한 진실을 전달해 주었다는 점과 초반부에 등장한 흥미로운 다빈치 그림들의 코드를 들려준 것만으로도 유쾌하고 색다른 책읽기의 순간이긴 하였다.
*P. S : 번역의 악평과 누락으로 인해 어쩌면 원작의 맛을 제대로 못살려 읽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