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 코진스키라는 사람은 이 책을 읽기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름의 신선함 때문이라기 보다는 웬지 모르게 읽기 편하지 않을까 싶은가벼운 마음에 책을 집어 들었다
역시나 지하철 틈틈히 20분씩 삼일만에 해치워버렸다. 그러나!! 책의 길이 만큼 이 책이 가벼운 책인가? 라는 질문에는 부정을 하고 싶다. 또한, 저지 코진스키와의 대화가 뒷편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그 인터뷰들을 보면 저지 코진스키가 얼마나 멋진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책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평생 인생을 tv 만 바라보면서 지내온 인간이 진짜 세상을 만나면서 모든 지식을 tv 에서 끌어 모은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1990년도에 나오지 않았나 싶다.(아마존에서 나온 책은 1999년 판이었다. 위에 있는 사진-_-) 지난번에 소개했던 "서바이버" 가 교육체제 속에 갇힌 한 인간이 사회에 어떻게 사회화 되어 가는가를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정 반대로 교육이 전혀 되지 않은 인간. 오로지 tv 속의 이미지로만 주입된 인간이 '진짜' 사회속에서 어떻게 생활하는가를 보여준다. 공통점이라면, 두 인물 모두 자신이 주입된 이미지와 교육의 형태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아무것도 교육받지 않은 한 인간이 사회의 최고층에 노출되었을 때, 그것도 최고급 양복과 최고급 가방을 짊어진 채 등장했다면 어떤 식으로 그들과 융합될 수 있을까 하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가 아는건 오로지 정원뿐이다. 정원에서만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의 세상은 정원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 양 극단은 서로 같은 잣대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여 서로 만난다. 주인공인 초온시 가드너는 tv속 이미지를 대입시켜 실제의 그들을 이미지화시킨다. 반대로 사회 최고층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초온시 가드너의 이미지(부유계층에 엄청난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상당한 인텔리 일것이라는) 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대로 해석하려 한다. 이렇게 서로의 서로의 이미지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마디 한마디 하면 척척 착착이다. 초온시가 경제에 대해 묻는 질문에 어눌한 말투로 "정원에서는...봄과 여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오죠..." 라는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 없는 말을 내뱉지만, 사람들은 그가 진정으로 경제의 논리를 자연속에 대입시킬 줄 아는 지성인이라고 떠들어댄다. 이 얼마나 웃지못할 상황인가. 이럴때를 일컬어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하지..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씁쓸했던 것은,아무것도 아닌 것을 겉치레로 무장한 이미지로 곱게 포장하려고 하는 상층계층의 우스꽝스러운 행위들보다 내 자신이 tv 키드라는 사실이다. 실로, 나는 가드너마냥 모든 것을 tv 를 통해 얻고 있지는 않지만서도 상당수가 내가 바깥세상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는 tv 를 통해 생성된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는 내가 진정 세상을 나오기 전인 청소년기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지금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대부분은 tv 속 이미지에서 소생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가드너처럼 처음 접하는 세계에서는 내가 tv 속에서 봐왔던 이미지를 총 동원시켜서 이해하려 했던 적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결국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내가 이해하지 못한 허구들로 가득차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건 그저 내가 만들어낸 혹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주입받는것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든다. 또한,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내가 그렇게 보길 원하는 이미지대로 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