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허겁지겁 나가는 통에 아무 책이나 골라서 들고 지하철을 탔다. 그냥 평범한 SF 소설일줄 알고 아무런 기대감 없이 첫 장을 펼쳤다. 그동안 SF 소설의 지존은 필립 케이 딕이라고 굳건히 생각해 오던 터라 다른 SF 소설가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어릴 적에 학생과학만화 라는 시리즈의 책을 보면서 가장 궁금하고 가장 환상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시간'의 개념이었다. 지금 보는 저 별은 이미 몇 십 년 전에 있던 별의 모습이라니... 정말 신기함의 그 자체이며 풀 수 없는 물리학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풀 수 없는 난해한 물리학적 개념은 아무리 물리를 배워도 풀 수 없는 난제가 되었고, 내가 우주 여행을 할 것도 아닌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어릴 적 추억의 저편으로 멀리 내동댕이 쳐버렸다.
아무생각 없이 집어든 이 책에서 그렇게 멀리 내동 댕이 쳐져있던 추억 속의 '시간' 들을 다시금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두 쌍둥이가 한 명은 지구에 남고 한 명은 우주탐사단과 함께 우주를 항해한다. 왜? 둘은 텔레파시가 가능하다. 물론 둘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그들은 어떤 전파의 방해를 받지도 않으며, 전파가 통용되지 않은 물리적 공간에서 조차도 텔레파시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몇 광 년 떨어진 우주 한 가운데서도 텔레파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매력적인 설정은, 주인공이 우주를 항해하면 항해할수록 더욱더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지구의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지만 우주에서의 시간은 다르다. 특히 태양 주변에 있을수록 시간은 지구보다 빠르게 흐른다. 그래서 지구에서 70년이 흐르지만, 우주탐사단에 합류한 쪽은 고작 그들의 생물학적 시간으로 4년만 흐른 것이다.
기행문 형태(일기를 쓰기 위해 썼다고 화자는 밝히지만 기행문에 더 가깝다.)의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매우 자세히 관찰하고 상당히 절제된 문체를 사용한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감정의 이입보다도 스토리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한다. 극적인 사건이 좀처럼 없지만 흥미를 지속시키게 만드는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텔레파시'와 '시간' 일 것이다. 하루 밤 자고 일어나서 지구와 텔레파시로 통신하지만, 지구에서는 이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런 식으로 지구와의 통신의 이야기 흐름과 우주선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병행하면서 전체 스토리가 이어진다. 특별하게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사건이라면 마지막 행성에서 해저괴물들과 맞서 싸우다 대다수의 탑승원들이 전사하는 장면일 것이다. 1인칭 시점의 소설들은 주인공과 쉽게 감정이 동화되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은 감정이 동화될 만큼의 군더더기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문체를 구사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의 표현까지도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려서 표현할 정도이다. . 성장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주된 변화는 주인공이 자신의 쌍둥이 형한테 매일같이 알게 모르게 영향과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왔지만, 지구시간으로 70년의 항해를 거친 뒤 자기 자신의 감정이 제일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성장소설의 매력은 다름 아닌 주인공이 한 모험에 대한 동경심이 생겨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 역시도 '우주' 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만들어 주었다.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곳에서도 '텔레파시'를 주고받으며 서로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시간들을 보낸다는 설정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결론은 상당히 황당하다. 처음으로 접하는 하인라인 소설이지만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필립 케이 딕에 이어 무궁한 모험을 가져다준 작가이다. 처음 읽어보는 하인라인 소설이라 전체적으로 하인라인이 어떤 경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정독해야할 만한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