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은 동생이 무심결에 권해줘서 읽기 시작하였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제목과 동일한 "워터") 그러나, 읽는 순간부터 나는 이 책이 나를 오랫동안 지배하였던 감성코드라는 것쯤은 단박에 간파하였다. 갓 세상을 접하기 직전의 세대,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 것쯤은 어렴풋이 알지만, 그래도 희망어린 시선을 놓지 않으려는 눈망울을 지닌 시절.
이런 감성코드들과 조우하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어버린다.
주인공 로유운은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지만, 그런 상처를 가슴에 품고 싶지도 않고 툴툴 털어내고 싶지도 않은 채 그저 다른 형태로 살아가길 바란다. 남들처럼 대학에 가고 싶지도 않고, 가족의 아픔을 아픔으로만 치부하면서 아킬레스 건으로 살아가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날아다니길 바란다. 그렇다고 그가 방종하다는 의미는 아니고, 똑같이 복제되는 기계처럼 일률 화된 삶이 아닌 다른 삶속에서 뭔가 행복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저, 라이벌 학교와의 수영대결에서 이길 것을 생각하면서 가슴벅차하고, 따뜻한 햇살과 오랜 수영후의 짜릿한 쾌감을 위해 수영장을 찾는다. 그가 말하길, 똑같은 출발지점으로 가려고 기를 쓰기 보다는 다른 지점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특별한 사건이 있다해도, 그는 어찌할 수 없다. 그래봐야 그냥 고 3 학생일 뿐이다. 무엇을 해결할 수도, 단정할 수도 없는 나이이다. 상큼 하리리만큼 단순명쾌한 필체는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일어나는 사건들도 충분히 예상가는 한 것들이다. 형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어머니를 힘없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답답한 시선, 여고생과의 첫사랑, 친구들을 둘러싼 아픔 등 너무나 평범하게 누구나 있었을법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특별하지 않은 사건들 턱에 주인공이 특별한 인물이 아닌 그저 평범한 고3 학생으로 여겨지면서 감정이입이 되어버린다. 무엇보다도 요시다 슈이치의 책은 결말이 짜릿하다. 그 어떤 확정적인 이야기의 완결을 짓지 않은 채 정점의 순간에서 끝을 낸다. 이 작품 역시 제목인 ‘워터’ 답게 그 물의 싱그러움을 가득 안은 채 마지막 전광판을 보면서 끝을 낸다. 그 이후 료우운이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그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행복을 지켜낼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의 구조, 깔끔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문체, 신선한 결말 등은 요시다 슈이치를 작가 반열에 올라놓아도 손색이 없으리 만큼 훌륭한 점들이다. 또한 끊임없는 수영장과 수영에 대한 10대 아이의 예찬은 그 젊음, 패기, 희망의 시선 속에서 “물”의 충만함을 충분히 불러일으킨다. 나도 모르게 수영장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리턴”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그 영화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린 아직 시작도 안했자나!” 를 외칠 수 있는 희망의 시선을 던져준다. 나도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료우운이 달려가고 싶다던 그곳..그리고 달려 나갈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
비굴해지지 말라고 남들은 말한다. 노력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갖은 노력을 다해서 남들과 엇비슷한 자리에 서게 돼봤자..
예를 들어, 출발지점까지 죽기 살기로 달려가야만 하는 사람과
자동차에 편히 앉아 도착하는 사람이 있다. 달려온 사람은
헉헉 거리면서 또다시 출발점부터 달려 나가야만 한다. 난 그러고 싶지 않다. 나라면 출발지점과는 다른 장소로 달려간다. 거기에 아무도
모여있지 않다고 해도 그곳으로 달려간다.
- 요시다 슈이치의 "워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