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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oming
  • 셰어하우스 플라주
  • 혼다 데쓰야
  • 7,920원 (10%440)
  • 2020-06-01
  • : 392

어느 날 반쯤 불타 버린 집 때문에 빈털터리 신세가 된 다카오는 수소문 끝에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찾아간다. 그는 각성제 복용으로 현재 집행유예 상태니 플라주의 입주 조건에 맞는 셈이다. 『셰어하우스 플라주』의 이 도입부는 웹툰 원작의 드라마인 ‘타인은 지옥이다’를 떠올리게 한다. 새로 들어온 입주자인 다카오의 시점으로 플라주의 풍경과 이미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인물들을 차례대로 보여줄 때 말이다. (플라주에는 전과자들만 입주가 가능하다지만 인물 묘사의 방식은 ‘타인은 지옥이다’가 훨씬 섬뜩하다.) 다카오가 이 이야기의 핵심 주인공인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다카오를 비롯해 플라주 속 다른 입주자들의 시점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 소설의 핵심은 제목에 들어간 ‘플라주’가 대변한다. “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이라는 뜻이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그것은 항상 흔들리고 있다.”, “‘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모호하게 계속 흔들리는 사람과 사람의 접점. 남과 여,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 그리고 죄와 용서” 플라주를 설명한 두 문장이다. 그니까 플라주는 경계, 접점, 완충지대를 상징하는 셈이다. 이 곳의 주인인 준코는 전과자들이 죄 값을 치르고 다시 재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같이 밥 먹고 문 대신 커튼으로 가린 채 생활한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서로의 사연을 안타까워하기도, 사이코패스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플라주를 잠복취재하기 위해 가명으로 들어간 기자 하야미 요이치가 컴퓨터에 남긴 글에서 설명하듯 그녀는 성선설을 믿었던 사람인걸까? 플라주는 완충지대라고 하기엔 준코의 바람을 담은 판타지에 가까운 공간이 아니었을까..

사실 재소자들의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다. 대개는 죄 값을 받아야 하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거나 법원이 가해자의 편을 드는 것과 다름없는 판례가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범죄자들이 감옥만 들어가면 그 이후의 삶은 없어지는 게 마땅하다 여겼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물론 죄질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억울한 사연’, ‘순간 이성을 잃어서’, ‘인생에서 일어난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 등의 표현은 과연 정당한 걸까. 인간은 이기적이고 불완전하지만 대개 범죄 행위를 저지르기 직전까지 가다 만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단계를 넘어선 거 아닌가. 용서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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