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어떤 삶일지 궁금했다. 나는 도리스 레싱처럼 부지불식간에 동물을 마주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키워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를 사랑했고 내 삶에 개를 들이는 순간 그 대상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될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리고 개를 먼저 떠나보내게 된다면 사람답게 살기 어려워질 것 같다는 슬픈 예감부터 들곤 했다. 고양이는 아직 낯선 존재이다. 고양이에게 느끼는 유대감은 도대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없었다.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에는 고양이를 포함한 반려동물의 생과 사를 지켜본 이라면 경험했을법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나처럼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는 묘한 간접 체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이다.” 『고양이에 대하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문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레싱은 고양이로부터 한발 짝 떨어져서 그들의 행태를 면밀히 관찰하는 데 집중한다. 레싱의 이러한 성정은 무엇보다 초반에 묘사된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이 크다고 본다. 중성화 수술이라는 게 존재하기 전 끊임없이 번식하는 고양이의 개체수를 막기 위해 살육을 감행하고 마침내 자신의 의무를 포기하고 마는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강렬하다. “옛날에는 이 힘든 일을 모두 어머니가 하셨을 것이다. 농장 일은 남자들 몫, 집안일은 여자들 몫. 도시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집안일보다 할 일이 훨씬 많다 해도 이 원칙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것 역시 어머니의 몫이었다. 집안일에 함께 딸려오는 노동이었으니까. 어머니는 인간적이고, 현명하고, 기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면에서 실용적이었다. 아니,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고 거기에 보조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울한 역할이었다.” 그렇게 고양이는 레싱의 유년시절을 거쳐 이십 오년 만에 다시 나타난다. 어딘가 개처럼 행동하는 고양이, 죽일 수밖에 없었던 고양이, 길모퉁이 식품점 창문에 장식품처럼 앉아 있는 고양이, 술집에 데려간 커다란 검은 고양이, 공주 고양이, 못생긴 고양이, 작고 깔끔하고 우아한 검은 고양이, 추레한 오렌지색 고양이. 이들이 태어나고 아프고 짝짓기하고 새끼를 낳고 죽어가는 모습을 모두 감당하는 그런 삶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리고 또 다른 고양이에게 손을 내민다. 고양이와 인간을 맺어주는 이 힘은 무엇일까? 레싱이 정의한 ‘매력’이란 단어가 힌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매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우아함,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어떤 특징을 아낌없이 내뿜는 것, 하지만 여기에는 조금 불편한 부분,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부분,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부당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 처음부터 남들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을 지니고 태어나는 생물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반드시 도로 내놓아야 하는 건가? 매력이란 과와의 것, 남아도는 것, 불필요한 것, 그냥 마구 나눠주는 어떤 힘 같은 것이다.”